설문 문항 하나 때문에 3시간 회의한 날

설문 문항 하나 때문에 3시간 회의한 날

오전 10시, 회의실 설문 문항 검토 회의다. 30분 잡았다. "이 문항 어때요? '서비스 이용에 만족하십니까?'" 마케팅팀 대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포괄적이에요. 무엇에 대한 만족인지 명확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설명을 시작했다. 만족도라는 게 단일 차원이 아니라는 것. 기능 만족, 디자인 만족, 속도 만족이 전부 다르다는 것. "그럼 이렇게 하죠. '서비스 기능에 만족하십니까?'" 여전히 안 된다. '기능'도 애매하다. 검색 기능인지, 결제 기능인지, 알림 기능인지.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데이터팀 팀장이 말했다. "근데 너무 세분화하면 문항 수가 너무 많아지는데요?" 맞는 말이다. 설문 길이와 정확성의 트레이드오프. 항상 마주하는 딜레마다. 문항 설계의 함정 설문 문항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렵다. 지난주에 진행한 설문이 있었다. "신기능을 자주 사용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결과는 70%가 "그렇다"였다. 우리는 좋아했다. 신기능이 잘 먹힌다고. 그런데 GA4 데이터를 보니 이상했다. 실제 사용률은 35%였다. 응답과 실제가 달랐다. 문제는 '자주'였다. 누구에게는 주 1회가 자주고, 누구에게는 하루 5회가 자주다. 주관적 표현이 데이터를 망쳤다. 리서치 결과를 가지고 기획 방향을 잡았는데, 그게 틀렸다는 얘기다. 3주 작업이 날아갔다. 그때부터 문항 하나에 집착한다. 단어 하나, 문장 구조 하나가 결과를 바꾼다.회의는 계속됐다 11시가 됐다. 아직도 같은 문항이다. "이렇게 물으면 어때요? '지난 한 달간 검색 기능을 몇 회 사용하셨습니까?'" 좋아졌다. 구체적이다. 기간도 명확하고, 기능도 명확하고, 빈도도 숫자로 받는다. 그런데 개발팀장이 손을 들었다. "사용자가 정확히 기억할까요? 저도 제가 한 달에 검색 몇 번 했는지 모르는데." 또 막혔다. 회상 오류. 리서치 방법론 수업에서 배운 개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부정확하게 기억한다. 특히 반복적 행동은 더 그렇다. "그럼 선택지를 주면 어떨까요? 0-5회, 6-10회, 11-20회, 21회 이상." 구간을 나누면 회상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구간이 비대칭인데요?" 마케팅 팀장이 지적했다. "앞은 5회씩 나누고 뒤는 10회씩 나누면 왜곡 아닌가요?" 맞다. 구간 설정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 0-10회, 11-20회로 나누면 분포가 달라진다. 점심시간을 넘겼다 12시 반. 아직도 회의 중이다. 배가 고프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 이 문항으로 1500명한테 설문을 돌린다. 잘못 만들면 1500개의 쓸모없는 응답이 생긴다. "처음으로 돌아가죠. 우리가 진짜 알고 싶은 게 뭐죠?" 내가 물었다. 회의의 기본이다. 목적으로 돌아가기. "신기능이 사용자에게 유용한지 알고 싶어요." 프로덕트 오너가 답했다. "그럼 '유용함'을 어떻게 측정할 건데요?" 침묵. 유용함도 애매한 개념이다. 만족도처럼. "사용 빈도로 측정할까요? 아니면 만족도로 측정할까요?" 두 개는 다르다. 자주 쓰지만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선택지가 없어서 쓰는 경우. 반대로 자주 안 쓰지만 만족할 수도 있다. 필요할 때만 쓰는 기능이면."둘 다 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결국 문항이 2개가 됐다. 하나는 행동 측정, 하나는 태도 측정. 행동: "지난 한 달간 [기능명]을 사용한 횟수를 선택해주세요." 태도: "[기능명]이 귀하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두 번째 문항도 또 논쟁이 시작됐다. '문제 해결'이 명확한가. 어떤 문제인가. 1시, 드디어 문항 하나가 완성됐다. 정확히는 두 개가 됐지만. 3시간 걸렸다. "[기능명]을 지난 한 달간 사용한 횟수를 선택해주세요.사용하지 않음 1-3회 4-7회 8-15회 16회 이상""[기능명]을 사용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까?전혀 도움 안 됨 별로 도움 안 됨 보통 도움 됨 매우 도움 됨 ※ 사용하지 않은 경우 '해당 없음' 선택"구간은 로그 스케일로 조정했다. 초기 사용자와 파워 유저를 동시에 잡기 위해. '문제 해결' 대신 '원하는 결과'로 바꿨다. 더 포괄적이고 덜 무겁다. 5점 척도는 리커트 표준. 홀수로 해야 중립 선택지가 생긴다. 이것도 논쟁이 있었지만 일단 표준을 따랐다. "해당 없음" 선택지를 추가했다. 사용 안 한 사람이 억지로 답하면 데이터가 오염된다. 회의 끝, 생각 시작 회의실을 나왔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동료가 말했다. "문항 하나에 3시간은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침에는.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3시간이 아깝지 않다. 잘못된 문항으로 설문 돌리면 3주가 날아간다. 3시간은 투자다. 리서치의 정확성은 문항 설계에서 시작된다. 측정 도구가 잘못되면 측정 결과도 잘못된다. 물리학 실험처럼. 자가 휘어져 있으면 길이를 정확히 잴 수 없다. 설문도 마찬가지다. 문항이 애매하면 응답도 애매하다. 애매한 데이터로는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없다. "우리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한다고 하잖아요." 동료가 끄덕였다. "그 데이터의 품질은 질문의 품질에 달렸어요. 질문이 엉망이면 데이터도 엉망이고, 의사결정도 엉망이죠." 오후 3시, 다시 검토 회의실로 돌아왔다. 이번엔 혼자. 완성된 문항을 다시 봤다. 정말 완성된 걸까. 체크리스트를 꺼냈다. 늘 쓰는 거다.명확성: 질문이 하나의 의미만 갖는가? - OK 구체성: 시간, 대상, 범위가 명확한가? - OK 중립성: 유도 질문이 아닌가? - OK 측정 가능성: 응답자가 답할 수 있는가? - OK 일관성: 다른 문항과 모순 없는가? - 확인 필요전체 설문 흐름을 봤다. 20개 문항. 우리가 만든 건 15번, 16번 문항이다. 앞뒤 맥락을 확인했다. 14번 문항: "새로운 기능을 알고 계셨습니까?" 15번 문항: "[기능명]을 지난 한 달간 사용한 횟수..." 16번 문항: "[기능명]을 사용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흐름이 자연스럽다. 인지 → 행동 → 태도. 리서치 프레임워크와 일치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보였다. 14번에서 "모름"을 선택한 사람은 15번, 16번을 스킵해야 한다. 조건부 질문 로직이 필요하다. 설문 도구 설정에 추가해야 한다. 디테일의 연쇄 문항 하나가 다른 문항에 영향을 준다. 15번에서 "사용하지 않음"을 선택하면 16번에서 "해당 없음"이 자동 선택되어야 한다. 응답자 경험을 생각하면 그렇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짜증 난다. 설문 이탈률이 올라간다. 완료율이 내려간다. 데이터 품질이 떨어진다. 이런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문항 설계는 단순히 질문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응답자 여정을 설계하는 거다. UX 기획과 같다. 사용자 플로우를 그리듯이 응답 플로우를 그린다. Figma를 열었다. 설문 플로우를 그렸다. 시작 → 스크리닝 → 인지도 → 사용 경험 → 만족도 → 개선 의견 → 인구통계 → 종료 각 단계에서 분기 조건을 표시했다. 조건부 로직 6개. 스킵 로직 4개. 이걸 설문 도구에 구현해야 한다. 그것도 일이다. 오후 5시, 테스트 설문을 직접 응답해봤다. 연구원이 해야 하는 기본 중 기본이다. 자기가 만든 설문을 자기가 풀어보기. 1분 30초 걸렸다. 20개 문항. 적당하다. 3분 넘어가면 이탈률이 확 오른다. 그런데 11번 문항에서 걸렸다. "귀하의 직업을 선택해주세요." 선택지가 10개다. 너무 많다. 5개로 줄이고 "기타"를 추가하는 게 낫다. 또 수정이다. 11번 수정하면 전체 번호가 밀린다. 15번, 16번이 16번, 17번이 된다. 조건부 로직 설정도 다시 해야 한다. 이런 게 쌓인다. 수정이 수정을 낳는다. 그래서 처음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문항 하나에 3시간 쓰는 이유다. 파일럿 테스트 동료 5명에게 설문을 보냈다. 내부 테스트다. "10분 안에 풀어주시고, 이상한 부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30분 후 피드백이 왔다. "15번 문항 구간이 이상해요. 1-3회는 너무 적고 16회 이상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16번 문항에서 '원하는 결과'가 애매해요. 무슨 결과요?" "왜 중간에 기능 이름이 계속 반복돼요? 한 번만 나와도 될 것 같은데요." 피드백 3개. 모두 타당하다. 구간은 다시 조정했다. 1-2회, 3-5회, 6-10회, 11-20회, 21회 이상. 좀 더 세분화됐다. 초기 사용자 구간을 쪼갰다. '원하는 결과' 옆에 예시를 추가했다. (예: 필요한 정보 찾기, 작업 완료하기) 기능 이름은... 반복이 맞다. 각 문항이 독립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응답자가 앞 문항을 기억한다고 가정하면 안 된다. 이건 설득했다. 근거를 댔다. 응답 오류를 줄이려면 맥락을 매번 제공해야 한다고. 오후 6시, 최종안 설문 최종안이 나왔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8시간. 문항 1개 완성하는 데 3시간, 전체 다듬는 데 5시간. 하루가 갔다. 다른 일은 못 했다. 그런데 후회는 없다. 이제 이 설문으로 1500명에게 물어볼 수 있다. 정확한 질문. 정확한 응답. 정확한 데이터. 정확한 인사이트. 이게 리서치의 가치다. 다음 주에 설문이 나간다. 응답률 목표는 30%. 450개 응답. 그 데이터로 기획 방향을 잡는다. 다음 분기 로드맵에 반영된다. 만약 문항이 잘못됐다면? 450개의 쓸모없는 응답. 잘못된 방향. 3개월 낭비. 3시간이 3개월을 살린다. 퇴근길 생각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리서치는 과학이다. 정확성이 생명이다. 문항 하나가 대충이면 전체가 대충이 된다. 설문은 체인처럼 연결돼 있다. '유저 리서치 비용이 너무 높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맞다. 높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런데 부정확한 리서치 비용은 더 높다. 잘못된 방향으로 개발하는 비용. 다시 뒤집는 비용. 그걸 설득하는 게 내 일이다. 9년 차가 됐지만 여전히 어렵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고 하면서 데이터 품질은 신경 안 쓴다. 모순이다. 질문이 틀리면 답도 틀리다. Garbage in, garbage out. 집에 왔다. 노트북을 켰다. 최종 설문안을 다시 봤다. 완벽하진 않다. 완벽한 설문은 없다. 하지만 최선은 다했다. 내일 아침 마케팅팀에 공유한다. 승인받으면 설문 도구에 세팅한다. 다음 주 월요일 발송. 2주간 데이터 수집. 그다음 주 분석. 한 달 프로젝트다. 문항 하나에서 시작하는.3시간 회의. 아깝지 않다. 정확성이 전부다.

UX 컨퍼런스 가는 주말, 회사 동료는 쉬고 있다

UX 컨퍼런스 가는 주말, 회사 동료는 쉬고 있다

토요일 아침 9시 알람이 울렸다. 토요일인데. UX Korea 2024 컨퍼런스. 사전등록 15만원. 작년에도 갔다. 재작년에도. 남편은 옆에서 자고 있다. 같은 회사 개발자. 주말에 개발 컨퍼런스? 절대 안 간다. "주말까지 일 생각하기 싫어." 나는 옷을 입는다. 편한 옷. 노트북, 아이패드, 펜슬. 가방이 무겁다. "또 가? 회사 돈 안 나오잖아." 남편 말이 맞다. 회사 지원 없다. 15만원 내 돈. 교통비도 내 돈. "그래도 가야지." 왜 가야 하냐고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온다. 그냥 안 가면 불안하다.강남역 코엑스 9시 반. 이미 사람이 꽉 찼다. 명찰을 받는다. "김지은 / UX기획팀 / ○○○○". 회사명 적는 게 자연스럽다. 다들 적는다. 로비에서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이 명찰을 본다. 내 명찰도 본다. 대기업이라는 게 보인다. 시선이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저도 UX 하는데요." 3년 차 후배다. 스타트업. 연봉 4500만원이라고 한다. "선배님, 대기업 UX 어떠세요? 저도 가고 싶은데." 어떠냐고? 잘 모르겠다. "리서치 환경은 좋아. 예산도 있고. 근데..." 말을 흐린다. 근데 뭐지? 정치? 느린 의사결정? 혁신 없는 안정? "부럽네요. 저희는 리서치 예산 없어서 게릴라 인터뷰만..." 그 말에 죄책감이 든다. 나는 혜택받고 있다. 7200만원. 복지. 안정성.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첫 번째 세션 "AI 시대의 UX 리서치" 연사는 미국에서 온 리서처. 구글 출신. 이력이 화려하다. "GPT-4를 활용한 유저 인터뷰 분석. 시간을 70% 단축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끄덕인다. 노트를 적는다. "GPT-4 인터뷰 분석 - 70% 단축". 근데 우리 회사는 GPT 못 쓴다. 보안 문제. 내부 LLM 도입 중인데 언제 될지 모른다. 적은 노트가 무의미해 보인다. "Synthetic User를 만들어 빠르게 프로토타입 검증..." 또 끄덕인다. 또 적는다. "Synthetic User". 이게 뭔지도 잘 모른다. 9년 차다. 모르는 게 나온다. 작년엔 "Behavioral Analytics Platform". 재작년엔 "Jobs-to-be-Done 2.0". 매년 새로운 게 나온다. 따라가야 한다. 옆 사람이 속삭인다. "우리 회사도 도입해야 하나?" 나도 생각한다. 우리도? 근데 기존 프로세스는? 기존 리서처들은? 세션이 끝났다. 1시간. 머리가 아프다.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먹는다. 15,000원. 비싸다. 테이블에 앉았다. 옆에 또 누가 온다. "혹시 ○○○○ 다니세요?" 명찰을 봤다. 또 시작이다. "네. UX 기획 하고 있어요." "와, 거기 UX팀 유명하잖아요. 부럽다." 부럽다는 말을 오늘만 세 번 들었다. "선배님은 몇 년 차세요?" "9년." "와. 시니어시네요. 저 1년 차인데 조언 좀..." 조언. 뭘 해줘야 하나. "많이 보고, 많이 만들어 보고, 유저 인터뷰 많이 하고." 진부한 조언이다. 내가 들어도 진부하다. "컨퍼런스도 자주 오세요?" "응. 자주." "대단하다. 저는 돈이 아까워서..." 1년 차는 15만원이 크다. 나도 1년 차 땐 컨퍼런스 안 왔다. 그런데 9년 차인 지금, 15만원 내고 왜 오는 걸까. 배우려고? 트렌드 따라가려고? 아니면 불안해서?오후 세션들 "데이터 기반 퍼소나 구축" "디자인 시스템과 UX 거버넌스" "리서치 없이 빠르게 검증하는 법" 세 개를 연속으로 들었다. 3시간. 노트는 가득 찼다. 10페이지. 근데 월요일에 뭘 쓸 수 있을까. GPT-4? 못 쓴다. Synthetic User? 우리 환경에 안 맞는다. 빠른 검증? 우리 회사는 느리다. 정치적 이유로. 적은 건 많은데 쓸 건 없다. 마지막 세션이 끝났다. 5시. 사람들이 네트워킹 한다. 명함을 주고받는다. 나도 몇 장 받았다.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연락 주세요." 연락 안 온다. 작년에 받은 명함들도 연락 없었다. 로비를 나선다. 밖은 어둡다. 집에 오는 지하철 7호선이다. 앉았다. 카톡이 왔다. 남편. "저녁 먹고 와? 나 치킨 시켜 먹었어." 나도 배고프다. 근데 피곤하다. "응 먹고 갈게." 거짓말이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 적은 노트를 본다. "GPT-4 인터뷰 분석 - 70% 단축" "Synthetic User 프로토타입 검증" "데이터 기반 퍼소나 자동 생성" 화려하다. 미래적이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우리 팀은 아직 엑셀로 리서치 데이터 정리한다. Notion 전환한 지 1년 됐다. Figma로 프로토타입 만드는 것도 작년부터다. 9년 전 내가 입사했을 때. 파워포인트로 와이어프레임 그렸다. 지금은 Figma. 5년 후엔? 또 바뀐다. 계속 배워야 한다. 안 배우면 도태된다. 근데 언제까지 배워야 하나. 휴대폰을 본다. UX 커뮤니티 단톡방. "오늘 컨퍼런스 어땠어요?" "저도 갔어요! AI 세션 대박이었어요." "Synthetic User 우리도 도입해야 할 듯." 다들 흥분했다. 나도 댓글을 단다. "좋았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또 거짓말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9시. 팀원이 물었다. "주말 잘 쉬셨어요?" "응. 컨퍼런스 갔다 왔어." "또요? 주말까지 고생하셨네요." 고생이 아니다. 배우러 간 거다. 근데 뭘 배웠지?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GA4 대시보드를 본다. "이번 주 리서치 일정 조율해 주세요." 팀장 메시지다. "네. 오전 중에 공유드리겠습니다." 같은 일이다. 지난주랑. 지지난주랑. 유저 인터뷰 일정 잡고. 설문 만들고. 데이터 분석하고. 인사이트 정리하고. 기획에 반영하고. 컨퍼런스에서 배운 건? 안 쓴다. 못 쓴다. 환경이 안 된다. 그럼 왜 갔나. 불안해서다. 안 가면 뒤처질 것 같아서. 점심시간 대화 후배랑 밥을 먹었다. 5년 차. "언니, 주말에 컨퍼런스 갔다 오셨다며요?" "응. 재밌었어." "부지런하시다. 저는 주말엔 쉬고 싶어서..." 맞는 말이다. 쉬어야 한다. 주말은 쉬는 날이다. "근데 언니, UX 트렌드 계속 따라가야 하나요? 솔직히 피곤해요." 5년 차의 고민이다. 나도 5년 차 때 같은 고민 했다. "따라가야지. 안 그러면..." 말을 멈췄다. 안 그러면 뭐? 도태된다? 회사에서 잘린다? 경쟁력 떨어진다? 다 핑계다. 진짜 이유는 불안이다. 내가 뒤처지는 게 무서워서. 시니어인데 트렌드 모르면 창피해서. "언니도 불안하세요?" 후배가 물었다. "응. 불안해." 솔직하게 답했다. "9년 차인데요?" "9년 차라서 더 불안해."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표정. "저도요. 요즘 AI 나오면서 UX 리서처 필요 없어질까 봐..." 다들 불안하다. 1년 차도. 5년 차도. 9년 차도. 이 업계가 그렇다. 빠르게 변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근데 언제까지. 수요일 저녁 야근이다. 리서치 보고서 정리. 7시. 팀원들은 다 갔다. 나만 남았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GPT-4 인터뷰 분석"이 생각났다. 70% 단축. 나는 수동으로 한다. 녹취록 보고. 인사이트 추출하고. 카테고리 분류하고. 3시간 걸렸다. GPT 쓰면 1시간이다. 근데 못 쓴다. 배운 게 무의미하다. 노트북을 닫았다. 9시. 집에 가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를 샀다. 500ml. 집에 와서 마셨다. 남편은 게임 중이다. "고생했어. 오늘도 야근?" "응." "주말에 쉬어. 컨퍼런스 말고." 맞는 말이다. 쉬어야 한다. 근데 다음 주 토요일. 또 컨퍼런스가 있다. "AI와 디자인의 미래". 신청했다. 12만원. 목요일 팀 회의 기획 회의다. 신규 서비스. "이번엔 리서치 스킵하고 빠르게 만들죠." PM이 말했다. "유저 리서치 없이요?" 내가 물었다. "네. 시장 빠르게 변하잖아요. 일단 만들고 AB테스트로." 이 대화. 100번 했다. "최소한 인터뷰라도..." "인터뷰 일정 잡으려면 2주 걸려요. 그냥 만들어요." 졌다. 또 졌다.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리서치 없이 빠르게 검증하는 법" 자료를 꺼냈다. 읽어봤다. "Lean UX". "빠른 프로토타입". "가설 검증". 우리가 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차이가 없다. 그냥 리서치 안 하는 거다. 둘 다. 컨퍼런스는 멋있게 포장했을 뿐. 금요일 오후 후배가 물었다. "언니, 이번 주말에 스터디 있는데 오실래요? UX 케이스 스터디." 스터디. 또. 작년엔 매주 갔다. 올해는 격주. 다음엔? "이번 주는 좀..." 거절했다. 처음으로. "아, 그러시구나. 바쁘신가 봐." 바쁜 게 아니다. 피곤하다. 배우는 게 피곤하다. 트렌드 따라가는 게 피곤하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게 피곤하다. 퇴근했다. 6시.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웠다. 남편이 물었다. "주말에 뭐 해?" "아무것도 안 해." "컨퍼런스 없어?" "있는데 안 가." "오, 대박. 처음이다." 맞다. 처음이다. 토요일 아침 10시 일어났다. 알람 안 맞췄다. 남편도 옆에서 자고 있다. 휴대폰을 봤다. UX 커뮤니티 단톡방. "오늘 컨퍼런스 오신 분?" "저요! 지금 가는 중." "AI 세션 기대된다." 나는 안 간다. 처음으로. 죄책감이 든다.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다. 시니어인데 안 배우면 창피하다. 근데 피곤하다. 번아웃 직전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TV를 켰다. 예능. 웃긴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 UX 생각 안 했다. 리서치 생각 안 했다. 트렌드 생각 안 했다. 1시간이 지났다. 죄책감이 줄었다. 일요일 저녁 주말이 끝났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배웠다. 컨퍼런스도 안 갔다. 스터디도 안 갔다. UX 아티클도 안 읽었다. 그냥 쉬었다. 남편이랑 영화 봤다. 공원 산책했다. 집에서 빈둥댔다. 죄책감은 있었다. 근데 괜찮았다. 월요일이 온다. 또 일한다. 또 리서치하고 기획한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건 못 쓴다. 환경이 안 된다. 괜찮다. 중요한 건 배우는 게 아니라 쉬는 거다. 9년 차다. 아직도 배워야 한다. 근데 쉬어야 한다. 균형이다. 배우는 것과 쉬는 것. 성장과 번아웃. 불안과 여유. 토요일 컨퍼런스. 다음엔 갈 수도 있다. 안 갈 수도 있다. 선택이다. 의무가 아니라.9년 차 시니어도 불안하다. 그래도 쉴 권리는 있다.

아이 계획과 경력 개발, 양쪽을 원한다는 게 죄인가

아이 계획과 경력 개발, 양쪽을 원한다는 게 죄인가

34세, 두 개의 타임라인 회의실에서 나왔다. 2026년 로드맵 논의. 내가 맡을 프로젝트가 3개다. 그 중 하나는 내년 하반기 런칭. 남편이 물었다. "올해 안에 시작할까?" 아이 얘기다. 나는 로드맵을 떠올렸다. 내년 하반기면 출산 휴가와 겹친다. "조금만 미루자." 내가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안다. 이게 세 번째 미루기라는 걸.노트에 적었다. 2025년 목표.Q1: 신규 서비스 UX 리서치 완료 Q2: 리더십 교육 이수 Q3: 컨퍼런스 발표 Q4: 팀장 승진 도전그 옆에 또 적었다.34세 7개월 난임 확률 상승 구간 진입 산부인과 권장: "빠를수록"두 개의 리스트가 나란히 있다. 둘 다 "빠를수록"이다. 선배의 케이스 스터디 UX 커뮤니티 모임에 갔다. 40대 초반 선배를 만났다. 8년 전 출산 후 복귀했다는 분. "복귀는 했는데." 선배가 말했다. "프로젝트 배정이 달라지더라.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맡고." 나는 물었다. "왜요?" "야근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출장 보내기 미안하다고. 배려래." 선배는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3년 지나니까 연봉 격차가 벌어져 있더라. 동기는 팀장이고 나는 시니어 그대로."또 다른 선배도 있다. 출산 안 하고 커리어에 집중한 분. 이사까지 올랐다. "후회 없어요?" 누군가 물었다. "있지." 선배가 답했다. "근데 둘 다는 안 됐을 것 같아."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둘 다 안 된다는 게 진짜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데이터를 찾아봤다. 여성 관리자 비율, 출산 후 복귀율, 승진 소요 기간. 숫자는 명확했다. 출산 휴가 다녀온 여성의 평균 승진 지연: 2.3년. 복귀 후 이직률: 38%. 5년 내 관리자 도달 확률: 23%. 유저 리서치하듯 데이터를 봤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유저였다. 회의실의 공기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이었다. 12개월짜리 대형 과제. "UX 리드는 민지씨가." 본부장이 말했다. 나를 봤다. "괜찮죠?" "네." 대답했다. 그때 옆 팀장이 말했다. "민지씨 요즘 어때요? 건강은?"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건강. 그 단어의 의미를 모두가 알았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12개월이면 내년 말까지인데." 팀장이 덧붙였다. "중간에 공백 생기면 안 되니까." 공백. 출산 휴가를 그렇게 불렀다.본부장이 정리했다. "민지씨 괜찮다니까 진행하죠." 미팅이 끝났다.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봤다. 34세 7개월의 얼굴. 생각했다. 내가 남자였으면 이 질문을 받았을까. "건강은 어때요?" "중간에 공백 생기면 안 되니까." 노트에 적었다.대형 프로젝트 수주: 커리어에 플러스 12개월 일정: 아이 계획 1년 연기 연기하면: 35세 7개월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35세 이후엔 확률이 확 떨어져요." 확률. 내가 매일 다루는 단어였다. A/B 테스트, 전환율, 신뢰구간. 그런데 이번엔 내 몸의 확률이었다. 남편과의 대화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물었다. "프로젝트 받았어?" "응. 12개월짜리." "그럼 또 미뤄지네." 젓가락을 놓았다.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없지." 남편이 말했다. "근데 민지야. 우리 언제 할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이 계속했다. "나는 괜찮아. 근데 너는 시간이 있잖아. 생물학적으로." "알아."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럼?" "모르겠어. 진짜로." 남편은 개발자다. 그에게도 커리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 가져도 커리어가 끊기지 않는다. 출산 휴가 8일. 그게 남자의 육아 휴직이다. 회사는 그를 "책임감 있다"고 칭찬한다. 8일 쉬고 돌아오니까. 나는? 90일이 최소다. 육아 휴직까지 하면 1년. 그 1년이 경력의 구멍이 된다. "공평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뭐가?" "다. 전부." 남편은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후배의 질문 후배가 커피를 사왔다. 상담 요청이었다. "선배."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어떻게 결정하실 거예요?" "뭘?" "아이요. 다들 선배 임신 준비 중이라고." 나는 웃었다. "소문이 빠르네." "저도 고민이에요." 후배가 말했다. "올해 31인데. 남자친구는 결혼하자는데." "네 목표가 뭔데?" "UX 리드 하고 싶어요. 선배처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후배가 계속 물었다. "가능할까요? 둘 다?"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답을 찾는 중이야." "선배도요?" "응. 나도." 후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롤모델이었는데 나도 답이 없으니. 생각했다. 내가 후배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뭘까. 성공적인 양립? 아니면 정직한 고민? "근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 "답이 없다는 게 답일 수도 있어." "무슨 뜻이에요?" "완벽한 타이밍은 없어. 어떤 선택을 하든 뭔가는 포기해야 해. 그게 현실이야." 후배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덜 후회할 쪽을 선택하려고 해." 컨퍼런스에서 UX 컨퍼런스에 갔다. 해외 연사가 발표했다. 40대 여성 CPO. "I had my first child at 36." 그가 말했다. "People said I was late. But I wasn't ready before." 청중이 집중했다. "I took 6 months off. Came back. Took another 6 months for second child. Came back again." "Did it slow my career? Yes. Did I regret it? No." 박수가 쏟아졌다. 질의응답 시간. 내가 손을 들었다. "How did you deal with the gap?" 내가 물었다. "The career gap?" 연사가 웃었다. "I didn't deal with it. I embraced it." "What do you mean?" "The gap isn't empty. You learn. You grow. Just differently." "But the company—" "The company that penalizes you for having a life?" 그가 말했다. "Maybe that's not the right company." 나는 메모했다. "Not the right company." 그런데 생각했다. 한국에 그런 회사가 몇 개나 될까. 데이터와 현실 사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유저 리서치 보고서를 열었다. 30대 여성 직장인 100명 인터뷰. 주요 페인 포인트:"커리어와 출산,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느낌" 87% "회사의 지원 제도 있으나 실효성 의심" 76% "복귀 후 업무 배제 경험" 64% "육아와 야근 병행의 어려움" 92%인사이트:제도는 있다. 하지만 문화는 없다. "배려"가 오히려 차별이 된다.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보고서를 작성했다. 추천 사항:육아 휴직 후 복귀 프로그램 강화 유연 근무 실질적 보장 승진 평가 시 휴직 기간 불이익 제거 남성 육아 휴직 의무화보고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후 피드백이 왔다. "좋은 인사이트입니다. 다만 실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산과 인력 문제로." 나는 웃었다. 유저의 니즈는 명확한데 솔루션은 없다. 내가 매일 싸우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유저였다. 그리고 솔루션은 여전히 없었다. 병원에서 산부인과에 갔다. 정기 검진. 의사가 물었다.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아직요." "나이를 생각하면." 의사가 말을 아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아요." "난임 검사는 받아보셨어요?" "아직이요." 의사가 검사 신청서를 건넸다. "한번 받아보세요. 미리 아는 게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청서를 봤다. 항목이 10개가 넘었다. 생각했다. 검사를 받으면 결과를 알게 된다. 그럼? 더 불안해질 것 같았다. 검사를 안 받으면? 모르는 채로 시간이 간다. 둘 다 두려웠다. 남편의 제안 주말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 계획 세우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임라인 그려보는 거야. 네가 UX 기획할 때처럼." 남편이 노트를 펼쳤다. 타임라인을 그렸다. 현재: 2025년 3월민지 프로젝트: ~2026년 3월 승진 심사: 2025년 12월시나리오 1: 프로젝트 후 임신2026년 4월 임신 시도 2027년 1월 출산 민지 나이: 36세시나리오 2: 지금 임신2025년 하반기 출산 프로젝트 리드 포기 승진 2~3년 지연남편이 물었다. "어떤 게 나아?" 나는 답하지 못했다. 둘 다 포기가 있었다. "아니면."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육아 휴직 할까?" "너도 커리어 있잖아." "근데 너만큼 타이트하진 않아."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슬펐다. 결국 여자가 더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해. 이런 고민 너만 하게 해서."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웃었다. "여자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선배에게 전화 밤에 전화했다. 8년 전 출산한 선배. "선배." 내가 물었다. "후회해요?" "뭘?" "낳은 거요." 선배가 웃었다. "애 키우는 건 안 후회해. 근데 커리어는 후회하지." "둘 다 잡을 순 없었나요?" "없었어. 적어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선." 침묵. "근데 말이야." 선배가 말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 "어떻게요?" "그때 포기 안 했으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 근데 상상이 안 돼." "왜요?" "애 낳고 나는 사람이 바뀌었거든. 우선순위도 바뀌고." 선배가 계속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선택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 "차이가 있어요?" "크지. 포기는 억울한 건데 선택은 내가 한 거니까." 전화를 끊었다.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결정하지 않기로 결정 다음 날 출근했다. 본부장이 불렀다. "민지씨. 프로젝트 괜찮죠?" "네." "중간에 공백 없죠?" 순간 화가 났다. 하지만 참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믿어요. 민지씨니까." 사무실로 돌아왔다. 노트를 펼쳤다. 적었다. "결정:프로젝트는 한다. 최선을 다한다. 아이 계획은 미루지 않는다. 병행을 시도한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포기가 생기면 그건 선택이었다고 기억한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는다."마지막 줄에 밑줄을 그었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임 검사 받자. 그리고 프로젝트도 하자. 둘 다." 남편이 답했다. "같이 하자." 34세 7개월의 선택 저녁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뭔가는 포기해야 한다. 그게 30대 여성 직장인의 현실이다. 그런데 포기를 강요하는 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둘 다 시도하기로 했다. 안 될 수도 있다. 중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도는 한다. 유저 리서치 할 때 배운 게 있다. 완벽한 솔루션은 없다. 하지만 최선의 솔루션은 있다. 제약 조건 안에서 최선을. 내 인생도 그렇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있다. 34세 7개월. 생물학적 타임라인과 커리어 타임라인이 겹친다.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시도한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니까.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저녁을 차려놨다. "검사 예약했어." 남편이 말했다. "다음 주 토요일. 같이 가자." "고마워." "뭐가. 당연한 건데."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더 고맙다.양쪽을 원하는 건 죄가 아니다.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문제다.

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6시 30분, 남편의 메시지 남편 메시지가 왔다. "나 퇴근. 저녁 뭐 먹지?" 나는 회의실에 있다. 유저 인터뷰 4번째. 아직 2명 남았다. 답장을 친다. "7시 반쯤? 미안." "또?" 또다. 맞다. 이번 주만 세 번째다. 남편은 개발자다. 같은 회사, 다른 팀. 그는 6시에 퇴근한다. 코드 커밋하고, 슬랙 끄고, 집에 간다. 깔끔하다. 나는 UX 기획자다. 6시에 퇴근한다는 건 이론상 가능하다. 실제로는 아니다.왜 UX 기획은 6시에 끝나지 않나 이유를 말하겠다. 첫째, 유저 인터뷰는 유저 시간에 맞춘다. 직장인 유저는 7시 이후에만 가능하다. "6시는 안 되세요? 퇴근 시간이라..."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린다. 둘째, 인터뷰 끝나고 정리한다. 녹취록 들으면서 인사이트 메모. 이게 1시간. "내일 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다. 맥락이 사라진다. 인터뷰할 때의 뉘앙스, 표정, 말투. 그게 다음날이면 흐릿하다. 셋째, 갑자기 터진다. 오늘도 그랬다. 5시 50분에 PM이 슬랙 날렸다. "내일 경영진 보고인데, 유저 반응 데이터 좀..." 10분 남았다. 근데 해야 한다. 안 하면 내일 회의에서 "UX팀은 뭐 했어요?" 듣는다. 넷째, 혼자 있어야 집중된다. 낮에는 회의, 협업, 질문 답변. 정작 내 일은 저녁에 한다. Figma 켜고, 유저 저니 맵 그리고, 와이어프레임 수정. 이게 몰입의 시간이다. 남편은 이해 못 한다. "그냥 내일 하면 안 돼?" 안 된다. 설명했다. 여러 번. 근데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상하다. 코드는 명확하다. 오늘 커밋, 내일 리뷰. 경계가 있다. UX는 경계가 없다. 유저 행동은 24시간이고, 인사이트는 샤워할 때 떠오르고, 개선안은 주말에 생각난다. 화요일 저녁 8시 30분 집에 도착했다. 8시 반. 남편은 소파에서 넷플릭스 보고 있다. "어, 왔어? 저녁 먹었어?" "응, 회사에서." "또 김밥?" "편의점 도시락." 한숨 쉬는 소리. 작지만 들린다. 나도 안다. 이게 좋지 않다는 거. 결혼 3년 차. 아직 아이 없다. 계획은 있다. 근데 이 패턴으로는 안 된다. 앉았다. 노트북 꺼냈다. "잠깐만, 인터뷰 정리 좀..." "지금?" "30분만." 남편이 TV를 껐다. 이건 신호다. 할 말 있다는 거."여보, 우리 얘기 좀 하자." 알았다. 이 대화가 올 줄. 개발자 남편 vs UX 기획자 아내 남편이 말했다. 차분하게. "나는 6시에 퇴근해. 너도 6시 퇴근이잖아. 근데 왜 너는 항상 늦어?" 설명했다. 위에 쓴 이유들. 유저 인터뷰, 갑작스런 요청, 정리 시간. "그건 알아. 근데 매일이잖아." 매일은 아니다. 이번 주가 특히 심했다. 리서치 스프린트 기간이라. "다음 주는 괜찮아. 인터뷰 끝나면..." "지난달에도 그랬잖아. '이번만'이라고." 맞다. 지난달도 그랬다. 그땐 신규 서비스 런칭 전이었다. AB테스트 데이터 모니터링하느라. 남편이 계속했다. "나는 코드 짜. 버그 고쳐. 근데 6시 되면 끝이야. 물론 온콜 있으면 다르지. 근데 평소엔 끝나. 왜 UX는 안 끝나?" 좋은 질문이다. 나도 궁금하다. "UX는 사람 일이야. 사람은 예측 안 돼. 인터뷰이가 30분 늦으면 우리도 30분 늦어지고. 데이터 이상하면 다시 확인해야 하고." "그럼 일정을 여유롭게 잡든가." "그럼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들어." 남편이 한숨 쉬었다. "그게 문제야. 너는 항상 남 눈치 봐." 그건 아니다. 눈치가 아니라... 뭐지? 책임감? 완벽주의?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불안이다. "UX가 뭐 하는 팀이에요?" 소리 들을까 봐. 리서치 예산 깎일까 봐. "그냥 빨리 만들고 AB테스트 하죠" 말 나올까 봐. 말 못 했다. 너무 솔직한 거 같아서. 같은 회사, 다른 세계 재밌는 건 우리 같은 회사 다닌다는 거다. 출근 시간 같다. 9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회의 몇 개야?" 물어본다. 점심 가끔 같이 먹는다. 사내 카페에서. 근데 일하는 방식은 완전 다르다. 남편 팀은 2주 스프린트다. 지라 티켓 명확하다. "로그인 API 개선", "결제 모듈 버그 수정". 시작과 끝이 있다. 코드 리뷰 받고, 머지하고, 배포. 끝. 우리 팀은 애매하다. "유저 이탈률 개선", "전환율 향상". 목표는 있는데 정답은 없다. 리서치하고, 가설 세우고, 검증하고, 다시 리서치. 순환이다. 남편은 성과 측정이 명확하다. "이번 스프린트에 10개 머지했어." "버그 5개 고쳤어." 숫자다. 나는 애매하다. "유저 인터뷰 8명 했어. 인사이트 12개 도출." 근데 그게 비즈니스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3개월 후에 알까? 아닐 수도. 남편 팀 회의는 30분. 스탠드업. "어제 뭐 했고, 오늘 뭐 하고, 블로커는 뭐." 끝. 우리 팀 회의는 1시간. 아니, 1시간 30분.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게 뭘까요?" "유저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요?" 해석의 시간. 남편은 말한다. "답 없는 회의는 시간 낭비 아니야?" 아니다. UX에서는 '답 찾는 과정' 자체가 일이다.9년 차의 고민 솔직히 말하겠다. 나도 헷갈린다. 이게 맞나? 9년 차다. UX 기획 9년. 신입 때는 몰랐다. "유저를 위해!" 외쳤다. 밤새워도 괜찮았다. 리서치가 재밌었다. 지금은 피곤하다. 유저 인터뷰 100번 넘게 했다. 패턴이 보인다. "불편해요", "복잡해요", "잘 모르겠어요". 비슷하다. 새로운 인사이트? 1년에 2~3개? 데이터 대시보드 매일 본다. GA4, Hotjar, Amplitude. 숫자가 바뀐다. 근데 왜 바뀌는지는... 가설일 뿐. 기획안 쓴다. 200페이지. PM한테 공유한다. "좋네요. 근데 개발 리소스가..." 반영 안 된다. 3개월 후에 축약 버전으로 나간다. 내 기획의 30%쯤? 그럼 나는 뭐 한 거지? 남편은 명확하다. 코드 짰다. 서버 올라갔다. 유저가 쓴다. 기여 명확. 나는? 간접적이다. "UX팀 덕분에 개선됐어요" 들어본 적 없다. "개발팀 고생했어요"는 맨날 들어도. 9년 차인데 성장하는 느낌이 없다. 신입 때는 매일 배웠다. 리서치 방법론, 분석 툴, 기획 프레임워크. 지금은? 같은 일 반복. 인터뷰하고, 분석하고, 기획하고, 안 되고. 루프. 후배들 보면 불안하다. 26살 주니어는 AI 툴 쓴다. ChatGPT로 퍼소나 초안 만들고, Midjourney로 무드보드 뚝딱. 나보다 빠르다. "시니어는 경험이 다르죠." 위안이다. 진짜? 경험이 경쟁력? AI가 100개 케이스 학습하면? 남편은 걱정 없다. 개발자는 수요 많다. 코딩 실력만 있으면 이직 쉽다. 연봉 올리기도. UX 기획자? 채용 공고 적다. "경력 3~5년, Figma 능숙자, 리서치 가능자, 기획 경험 필수." 요구는 많은데 자리는 적다. 9년 차의 선택지. 관리자 되거나, 전문가로 남거나. 관리자는 싫다. 사람 관리, 예산 관리, 정치. 그럴 거면 차라리 PM 했다. 전문가로 남으면? 10년 차, 15년 차 UX 기획자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없다. 다들 PM 전환하거나, 프리랜서 됐거나, 창업했거나. 내 미래가 안 보인다. 퇴근 후의 퇴근 남편이랑 대화 끝났다. 결론은 없었다. "이해해. 근데 힘들어" vs "나도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어". 노트북 껐다. 오늘은 인터뷰 정리 안 한다. 남편이랑 영화 봤다. 스릴러. 집중 안 됐다. 머릿속으로 오늘 인터뷰가 돌아갔다. "이 기능 왜 여기 있어요?" 유저가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나도 궁금하다. 기획한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예전에 누가 넣었대요." 레거시. UX에도 레거시가 있다. 기능 레거시, 플로우 레거시, "원래 그랬어요" 레거시. 영화 끝났다. 11시. 씻고 누웠다. 남편은 금방 잤다. 나는 핸드폰 봤다. UX 커뮤니티 글. "UX 주니어인데요, 포트폴리오 뭐 넣어야 할까요?" "유저 리서치 없이 기획만 하는 거 정상인가요?" "UX 기획자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전환 어떤가요?" 다들 고민한다. 나만 헷갈리는 게 아니구나. 댓글 달려다가 지웠다. 뭐라고 답하지? "9년 차도 헷갈려요"? 도움 안 된다. 핸드폰 내려놨다. 천장 봤다. 내일도 인터뷰다. 3명. 그리고 데이터 리뷰 회의. 그리고 기획안 수정. 그리고 퇴근은... 7시? 8시? 남편이 또 물을 것이다. "오늘은 제때 와?" "응, 올게." 말할 것이다. 근데 확신은 없다. 진짜 문제 문제는 늦게 퇴근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유저를 위해서? 9년 전엔 그랬다. 지금은... 습관? 회사를 위해서? 회사는 내가 8시까지 남아있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워라밸 챙기세요" 말한다. 내 커리어를 위해서? 이게 커리어에 도움 되나? 야근한다고 승진 빠른 것도 아니고. 그럼 왜? 불안이다. 확신이 없어서. "이 기획 맞아?" 모르겠다. 리서치 더 해야 할 것 같다. "이 데이터 충분해?" 아닐 것 같다. 샘플 더 모아야 할 것 같다. "이 인사이트 설득력 있어?" 글쎄. 사례 더 찾아야 할 것 같다. 개발자는 다르다. 코드 짠다. 테스트 돌린다. 통과하면 맞다. 실패하면 틀렸다. 명확하다. UX는 회색지대다. "이게 최선인가?" 영원한 질문. 정답 없다. 그래서 계속한다.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다듬고, 한 번 더 검증하고. 결국 완벽주의다. 근데 완벽은 없다. UX에 완벽은 없다. 유저가 다 다르고, 맥락이 다 다르고, 정답이 없는데 완벽을 찾는다. 9년 동안 이랬다. 피곤하다. 남편에게 못한 말 남편한테 못한 말이 있다. 사실 부럽다. 남편 일은 명확하다. 목표, 과정, 결과. 선형적이다. 내 일은 순환이다. 돌고 돈다. "개선했어요" 하면 "더 개선해주세요" 돌아온다. 끝이 없다. 남편은 성취감 있다. 배포하면 보인다. "내가 만든 기능이 서비스에 올라갔어." 뿌듯하다. 나는 애매하다. "내가 기여한 게 뭐지?" 간접적이다. "UX 개선으로 전환율 0.3% 올랐습니다" 근데 내 기여분은? 기획의 30%만 반영됐는데? 0.09%? 남편은 커뮤니티 있다. 개발자 밋업, 오픈소스, 스터디. 많다. UX는 적다. 있긴 있다. 근데 대부분 주니어 위주. 시니어 UX 기획자들은 뭐 하나? 안 보인다. 남편은 이직 쉽다. 링크드인에 헤드헌터 메시지 쌓인다. 나는? 1년에 1~2번? "적합한 포지션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교 멘트. 부럽다. 솔직히. 근데 말 못 한다. "나도 개발자 부러워" 하면 섭섭해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인정하기 싫어서. 9년 했는데 이제 와서 "내 선택 후회해" 하기는. 그럼에도 근데 이상하게 못 그만둔다. 매일 피곤하고, 불안하고, 확신 없는데. 그만둘 생각은 안 든다. 왜일까? 어제 인터뷰했던 유저 생각난다. 50대 아주머니. 우리 서비스 쓰는데 계속 헤맸다. "이게 어디 있어요?" 물었다. 메뉴 3depth에 숨어있었다. "아이고, 어렵네." 한숨 쉬셨다. 미안했다. 우리가 잘못 만들어서. 인터뷰 끝나고 바로 기획안 수정했다. 메뉴 구조 개선. 3depth → 2depth. PM한테 공유했다. "다음 스프린트에 반영할게요." 2주 후 배포됐다. 다시 그 유저한테 연락했다. "한 번 더 써보실 수 있으세요?" "어머, 이제 찾기 쉽네요." 그 순간. 그 순간 때문에 한다. 자주는 아니다. 1년에 몇 번? 근데 그게 있다. "이거 덕분에 편해졌어요." "전보다 훨씬 낫네요." "드디어 이해됐어요." 그 말 듣는 순간. 9년 치 야근이 괜찮아진다. 잠깐이지만. 개발자는 코드 짓는 재미가 있다. 로직 맞춰지는 재미. 버그 잡는 쾌감. UX 기획자는 유저 반응이다. "이제 됐네요" 그 말. 그게 보상이다. 적다. 불확실하다. 간접적이다. 근데 있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내일 아침 알람 맞췄다. 7시. 내일도 출근한다. 남편이랑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오늘 일찍 와" 할 것이다. "응" 대답할 것이다. 근데 확신은 없다. 인터뷰 일정 봤다. 3명. 마지막이 6시 30분. 1시간 걸리면 7시 30분. 정리까지 하면 8시. 또 늦는다. 남편한테 미리 말해야 하나. "오늘도 늦을 것 같아." 아침에 말하기는 좀 그렇다. 점심 때 말할까. "저녁 인터뷰 있어서..." "또?" 들을 게 뻔하다. 그냥 6시에 말할까. "30분만 더" 그것도 매번 하던 건데. 어렵다. 일보다 이게 더 어렵다. 유저 설득하는 건 쉽다. 데이터 보여주고, 인사이트 설명하고, 개선안 제안. 논리적이다. 남편 설득은 어렵다. "당신도 일 이해해줘" vs "나도 당신 이해해. 근데 매일은 힘들어". 둘 다 맞다. 정답 없다. UX 기획처럼.결국 늦게 들어갈 것이다. 남편은 소파에 있을 것이다. "어, 왔어?" 할 것이다. 나는 "응, 미안"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반복. 9년 차 UX 기획자의 일상이다. 화려하지 않다. 그냥 이렇다.

카톡으로 온 갑작스러운 일정 추가, 유저 인터뷰는 계획이 전부다

카톡으로 온 갑작스러운 일정 추가, 유저 인터뷰는 계획이 전부다

카톡으로 온 갑작스러운 일정 추가, 유저 인터뷰는 계획이 전부다 오후 6시 10분, 퇴근 10분 후 가방 메고 나가는데 카톡이 왔다. "내일 오전 10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급하게 섭외됐어요." 외주 리크루터다. 아니, 나도 내일 일정이 있다고. 10시는 기획 회의다. 2주 전에 잡았다. PM이랑 디자이너랑 3명 일정 맞춘 거다. 손가락이 멈췄다.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치고 보냈다. 엘리베이터에서 캘린더를 봤다. 내일은 회의 2개, 인터뷰 1개, 데이터 분석 데드라인. 이미 빡빡하다. 근데 이 유저는 놓치고 싶지 않다. 타겟 페르소나 정확히 맞는다. 40대 여성, 금융 앱 헤비유저, 투자 경험 5년 이상. 이런 유저 섭외가 얼마나 어려운데.리서치 일정은 내 것이 아니다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남편이 물었다. "또 일해?" "잠깐만." 캘린더를 다시 봤다. 내일 회의를 오후로 미룰 수 있을까. PM한테 카톡을 보냈다. "내일 회의 오후 3시로 가능할까요? 급하게 인터뷰 일정이..." 답장은 10분 후 왔다. "디자이너가 오후에 다른 미팅 있대요. 어렵겠어요." 그렇겠지.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내일 인터뷰를 11시로 미룰 수 있을까. 리크루터한테 물었다. "10시는 어렵고, 11시나 오후는 어떠세요?" "유저분이 오전만 가능하시대요. 오후는 회사 업무 있으시고." 당연히 그렇다. 유저도 직장인이다. 일정 맞추기 어렵다. 결국 회의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10시 회의 30분, 10시 40분 인터뷰 시작. 빡빡하다. 인터뷰 준비 시간이 10분밖에 없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유저 리서치 일정은 내 것이 아니다. 유저 중심이다. 말 그대로.품질은 계획에서 나온다 9년 차다. 인터뷰를 몇 개 했는지 센 적은 없다. 200개는 넘을 것 같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준비 없는 인터뷰는 의미 없다. 유저 인터뷰는 대화가 아니다. 리서치다. 가설이 있어야 하고, 질문이 설계돼야 한다. "서비스 어떠세요?" 이런 질문은 쓸모없다. "투자 결정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정보가 뭔가요?" 이게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 전에 최소 2시간은 준비한다.유저 스크리닝 정보 확인 (나이, 직업, 앱 사용 패턴) 가설 재정리 (이번 인터뷰에서 확인할 것 3가지) 질문 리스트 작성 (메인 10개, 서브 5개)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답변에 따라 추가 질문 준비) 녹화 장비 체크, 동의서 준비이게 최소한이다. 근데 내일은 10분밖에 없다. 회의 끝나고 바로 인터뷰 시작이다. 그래서 오늘 밤에 한다. 지금. 시계를 봤다. 10시 반이다. 남편은 거실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노트를 펼쳤다. 이번 인터뷰 목적은 명확하다. "40대 여성이 금융 앱에서 투자 정보를 어떻게 탐색하는가." 가설 3개를 적었다.뉴스 탭보다 종목 검색을 먼저 한다. 전문가 의견보다 커뮤니티 후기를 신뢰한다. 차트보다 요약 정보를 선호한다.질문을 만들었다. "최근 투자 결정한 종목이 있으신가요? 그때 어떤 과정으로 정보를 찾으셨나요?" 구체적이고 행동 기반이다. 이게 좋은 질문이다. 1시간 반 걸렸다. 질문 12개, 예상 시나리오 3개. 시계를 봤다. 자정이다. 내일 9시 출근이다. 7시간 자면 된다. 괜찮다.계획대로 안 되는 게 계획이다 다음 날 아침 9시. 회사 도착했다. 커피 마시고 회의 자료를 켰다. 10시 회의는 서비스 개편 방향 논의다. 9시 50분. PM이 슬랙을 보냈다. "10시 회의, 10분 늦을 것 같아요. 임원 보고가 길어져서요." 좋다. 10분 더 생겼다. 인터뷰 질문을 다시 봤다. 어젯밤에 만든 거다. 괜찮다. 흐름이 자연스럽다. 10시 10분. 회의 시작했다. 온라인이라 화면 공유만 켜고 카메라는 껐다. 기획 방향 얘기를 들으면서 인터뷰 스크립트를 출력했다. 프린터가 멀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노트북 화면을 두 개로 쪼갰다. 왼쪽은 회의, 오른쪽은 인터뷰 자료. 10시 35분. 회의가 끝났다. 5분 남았다. 회의실로 뛰었다. 3층이다. 엘리베이터 기다릴 시간 없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회의실 도착. 10시 39분. 책상 정리하고, 녹음기 켜고, 노트 펼치고, 물 한 잔 따르고. 10시 40분. 유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다행이다. 인터뷰 시작했다. 동의서 서명, 녹음 동의,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요즘 투자 어떻게 하세요?" 유저가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듣는다. 메모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에 투자 결정한 종목 있으세요?" "네. 지난주에 하나 샀어요." "그때 어떤 과정으로 정보를 찾으셨어요?" 예상과 다른 답이 나왔다. "사실 앱은 잘 안 써요. 유튜브 먼저 봐요. 전문가 채널 있잖아요." 가설 2번이 틀렸다. 커뮤니티가 아니라 유튜브다. 질문을 바꿨다. "유튜브로 정보를 찾은 후에는요?" "그다음에 앱에서 차트를 봐요. 영상에서 말한 거 맞는지 확인하려고." 가설 3번도 틀렸다. 차트를 본다. 요약 정보가 아니라. 인터뷰는 1시간 10분 걸렸다. 계획은 1시간이었다. 10분 초과했다. 근데 괜찮다. 좋은 인사이트가 나왔다. 유저를 배웅하고 회의실에 앉았다.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메모를 정리했다. 핵심 3개를 적었다.유저는 유튜브를 1차 정보원으로 쓴다. 앱은 검증 도구다. 차트는 필수다. 요약 정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문가 의견을 신뢰한다. 커뮤니티는 참고만 한다.가설이 틀렸다. 좋다. 이게 리서치다. 틀린 걸 확인하는 게 맞는 것보다 중요하다. 일정은 무너지고 리서치는 쌓인다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12시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오후 1시에 또 회의가 있다. 디자인 리뷰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자리에서 먹으면서 아침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타임스탬프를 적었다. 중요한 발언은 따로 표시했다.03:24 "유튜브가 제일 먼저예요" 15:47 "차트 안 보면 불안해요" 28:33 "커뮤니티는 그냥 분위기 보는 정도?"정리하다 보니 1시가 됐다. 샌드위치 반 남았다. 회의 들어가면서 먹었다. 디자인 리뷰는 2시간 걸렸다. 3시에 끝났다. 오후 일정을 봤다. 4시에 인터뷰 하나 더 있다. 이건 원래 계획에 있던 거다. 준비는 어제 했다. 괜찮다. 근데 아침 인터뷰 인사이트를 정리하고 싶다. 지금 안 하면 까먹는다. 30분만 쓰자. 노션을 켰다. 리서치 페이지를 만들었다. 제목: 2024.01.15 유저 인터뷰 #12 - 40대 여성, 금융 앱 사용 패턴 핵심 인사이트 3개를 적었다. 근데 또 카톡이 왔다. 리크루터다. "내일 인터뷰 한 분이 취소하셨어요. 대체 섭외 가능할까요?" 내일은 수요일이다. 오전에 인터뷰 2개 있다. 오후는 데이터 분석 마감이다. "오후 3시 이후 가능해요" 답장을 보냈다. "확인해볼게요." 시계를 봤다. 3시 40분이다. 20분 후 인터뷰다. 서둘러 노션 정리를 마쳤다. 완벽하지 않다. 나중에 다시 봐야 한다. 회의실로 갔다. 4시 인터뷰 준비했다. 이 유저는 30대 남성이다. 주식 초보, 앱 사용 3개월. 질문이 다르다. "처음 앱 깔았을 때 어땠어요? 어려운 점은 뭐였어요?"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1시간 정확히. 끝나고 6시였다. 퇴근 시간이다. 근데 나는 회의실에 앉아서 메모를 정리했다. 지금 안 하면 내일 아침에 해야 한다. 30분 더 썼다. 6시 반에 회사를 나왔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봤다. 리크루터한테 답장이 와 있다. "내일 4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50대 남성, 투자 경험 10년." 오. 이 유저도 좋다. 페르소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가능합니다" 답장을 보냈다. 집에 도착했다. 7시 반이다. 저녁 먹고 씻고 9시에 노트북을 켰다. 내일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한다. 남편이 물었다. "오늘도 야근?" "야근은 아니고 그냥 준비 좀." "매일 그러네." 맞다. 매일 그런다. 유저 인터뷰는 계획이 전부다. 준비 없이는 못 한다. 그래서 밤에 한다. 출근 전에 한다. 점심시간에 한다. 이게 UX 리서처의 일상이다. 유저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음 날 수요일. 인터뷰 3개를 했다. 오전 10시, 11시 반, 오후 4시. 점심은 또 편의점이다. 샐러드 하나. 인터뷰 사이사이에 메모를 정리했다. 완벽하게는 못 한다. 키워드만 적어뒀다. 저녁에 정리하려고. 4시 인터뷰가 끝나고 5시 반이었다. 회의실에서 메모를 봤다. 오늘 인터뷰 3개에서 나온 패턴이 보였다. "앱보다 외부 정보원을 먼저 찾는다." 이게 반복됐다. 유튜브, 블로그, 지인 추천. 우리 앱은 2차 검증 도구였다. 1차가 아니라. 이건 중요한 인사이트다. 기획 방향이 바뀔 수 있다. 노트북을 켜서 슬랙에 메시지를 썼다. PM과 디자이너한테. "이번 주 인터뷰에서 패턴 하나 발견했습니다. 공유 드리고 싶은데 내일 30분 시간 괜찮으신가요?" PM이 답했다. "오전 11시?" "좋습니다." 디자이너도 OK 했다. 자리로 돌아왔다. 6시 10분이다. 내일 공유할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해야 한다. 내일 아침은 또 인터뷰가 있다. 1시간 만에 간단한 슬라이드를 만들었다.인터뷰 개요 (대상, 일정, 목적) 핵심 인사이트 (외부 정보원 우선 탐색) 유저 발언 인용 3개 기획 시사점7시 20분에 끝났다. 퇴근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또 노트북을 켰다. 이번 주 인터뷰 5개 녹취록을 정리해야 한다. 금요일까지 리포트 초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주 월요일에 전체 공유가 있다. 녹취록은 AI 툴을 쓴다. Clova Note에 파일을 올리면 텍스트로 변환해준다. 근데 그걸 다시 읽고 정리하는 건 내 일이다. AI가 인사이트를 찾아주지는 않는다. 첫 번째 녹취록을 열었다. 40대 여성 인터뷰. 월요일에 한 거다. 1시간 10분짜리 대화가 A4 12페이지 텍스트로 변환돼 있다.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했다. 노션에 인사이트를 정리했다. 한 개 끝났다. 시계를 봤다. 10시 반이다. 4개 남았다. 남편이 자러 간다고 했다. "불 끄고 자." "응. 조금만 더." 11시 반까지 2개 더 했다. 3개 끝났다. 2개 남았다. 내일 하자. 너무 피곤하다.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봤다. 리크루터한테 메시지가 와 있다. "금요일 오전 인터뷰 한 분 추가 가능하신가요?" 금요일은 리포트 작성하는 날이다. 근데 이 유저도 놓치기 아깝다. "시간 알려주세요. 확인해볼게요." 답장을 보내고 눈을 감았다. 자야 한다. 근데 머릿속에서 인터뷰 내용이 맴돈다. 유저 발언들이 떠오른다. "앱은 확인용이에요." "유튜브가 더 편해요." "전문가 말을 믿어요." 이 말들이 계속 들린다. 잠이 안 온다. 일어나서 메모했다. 핸드폰 메모장에. '유저는 앱을 정보 탐색 도구가 아니라 검증 도구로 쓴다. 1차 정보원은 외부다.' 이게 이번 리서치의 핵심이다. 메모하고 다시 누웠다. 이제 잠이 온다. 내일 또 인터뷰가 있다. 준비해야 한다. 유저 리서치는 끝이 없다. 일정은 계속 추가된다. 계획은 매일 바뀐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유저를 만나는 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9년 차인데도 아직 배운다. 유저는 늘 예상 밖이다. 그게 힘들고 그게 좋다. 리서치는 삶을 먹는다 금요일 아침. 일어났는데 목이 아프다. 어제 인터뷰 3개 하면서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물을 마셨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오늘 일정을 봤다. 인터뷰 1개, 11시 공유 미팅, 오후는 리포트 작성. 빡빡하다. 근데 할 수 있다. 9시에 출근했다. 커피 마시고 어제 만든 공유 자료를 다시 봤다. 괜찮다. 인사이트가 명확하다. 10시에 인터뷰가 시작됐다. 금요일 추가 일정이다. 이 유저는 20대 여성이다. 투자 초보. 앱 사용 1개월. "처음에 뭐가 제일 어려웠어요?" "다 어려웠어요. 용어도 모르겠고, 어디서 뭘 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 어떻게 하셨어요?" "유튜브 봤어요. 초보용 강의 있잖아요." 또 유튜브다. 이번 주 인터뷰 6개 중 5개가 유튜브를 언급했다. 패턴이 확실하다. 인터뷰는 1시간 걸렸다. 11시에 끝났다. 바로 공유 미팅이다. 회의실로 갔다. PM과 디자이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슬라이드를 공유했다. 인사이트를 설명했다. "이번 주 인터뷰 6개에서 공통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유저들은 우리 앱을 1차 정보원으로 쓰지 않습니다. 유튜브, 블로그 같은 외부 채널을 먼저 보고, 앱에서는 확인만 합니다." PM이 물었다. "그럼 우리 앱의 역할은 뭐죠?" "검증 도구입니다. 외부에서 들은 정보가 맞는지 차트로 확인하는 용도죠." 디자이너가 말했다. "그럼 앱 내에서 콘텐츠를 강화해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외부 정보원과 연결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유튜브 링크를 앱 내에 제공한다거나." PM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중요한 것 같은데요. 다음 주 전체 미팅에서 공유해주세요." "네. 리포트로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미팅은 30분 만에 끝났다. 좋았다. 인사이트가 받아들여졌다. 자리로 돌아와서 리포트 작성을 시작했다. 이번 주 인터뷰 6개, 총 7시간 분량. 핵심 인사이트 5개. 기획 시사점 3개. 2시간 동안 집중해서 썼다. 점심도 안 먹었다. 3시에 초안이 완성됐다. 읽어봤다. 괜찮다. 근데 뭔가 부족하다. 유저 발언 인용이 더 필요하다. 녹취록을 다시 뒤졌다. 좋은 문장을 찾았다. "앱에서 정보를 찾기보다는, 유튜브에서 들은 걸 앱에서 확인하는 느낌이에요." 이 문장이 딱이다. 인사이트를 한 줄로 요약한다. 리포트에 추가했다. 읽어봤다. 이제 완성이다. PM과 디자이너, 그리고 팀장님께 공유했다. 시계를 봤다. 4시 반이다. 퇴근까지 1시간 반 남았다. 이번 주 정리를 했다. 인터뷰 6개, 회의 8개, 리포트 1개, 야근 3일. 힘들었다. 근데 보람 있다. 유저를 만났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사이트를 찾았다. 기획에 반영될 것이다. 이게 UX 리서처의 일이다. 6시에 퇴근했다. 이번 주는 칼퇴한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봤다. 리크루터한테 메시지가 와 있다. "다음 주 화요일 인터뷰 2개 가능하신가요?" 다음 주가 시작된다. 또 일정이 추가된다. "시간 보내주세요." 답장을 보냈다. 창밖을 봤다. 금요일 저녁이다. 사람들이 많다. 나도 저 중 하나다. 퇴근하는 직장인. 근데 집에 가면 또 노트북을 켤 것 같다. 다음 주 인터뷰 준비를 할 것 같다. 유저 리서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