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남편이 ‘또 퇴근 늦네’라고 할 때, 나는 뭘 하고 있나

6시 30분, 남편의 메시지

남편 메시지가 왔다. “나 퇴근. 저녁 뭐 먹지?”

나는 회의실에 있다. 유저 인터뷰 4번째. 아직 2명 남았다. 답장을 친다. “7시 반쯤? 미안.”

“또?”

또다. 맞다. 이번 주만 세 번째다.

남편은 개발자다. 같은 회사, 다른 팀. 그는 6시에 퇴근한다. 코드 커밋하고, 슬랙 끄고, 집에 간다. 깔끔하다.

나는 UX 기획자다. 6시에 퇴근한다는 건 이론상 가능하다. 실제로는 아니다.

왜 UX 기획은 6시에 끝나지 않나

이유를 말하겠다.

첫째, 유저 인터뷰는 유저 시간에 맞춘다. 직장인 유저는 7시 이후에만 가능하다. “6시는 안 되세요? 퇴근 시간이라…”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다린다.

둘째, 인터뷰 끝나고 정리한다. 녹취록 들으면서 인사이트 메모. 이게 1시간. “내일 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다. 맥락이 사라진다. 인터뷰할 때의 뉘앙스, 표정, 말투. 그게 다음날이면 흐릿하다.

셋째, 갑자기 터진다. 오늘도 그랬다. 5시 50분에 PM이 슬랙 날렸다. “내일 경영진 보고인데, 유저 반응 데이터 좀…” 10분 남았다. 근데 해야 한다. 안 하면 내일 회의에서 “UX팀은 뭐 했어요?” 듣는다.

넷째, 혼자 있어야 집중된다. 낮에는 회의, 협업, 질문 답변. 정작 내 일은 저녁에 한다. Figma 켜고, 유저 저니 맵 그리고, 와이어프레임 수정. 이게 몰입의 시간이다.

남편은 이해 못 한다. “그냥 내일 하면 안 돼?”

안 된다. 설명했다. 여러 번. 근데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상하다. 코드는 명확하다. 오늘 커밋, 내일 리뷰. 경계가 있다.

UX는 경계가 없다. 유저 행동은 24시간이고, 인사이트는 샤워할 때 떠오르고, 개선안은 주말에 생각난다.

화요일 저녁 8시 30분

집에 도착했다. 8시 반. 남편은 소파에서 넷플릭스 보고 있다. “어, 왔어? 저녁 먹었어?”

“응, 회사에서.”

“또 김밥?”

“편의점 도시락.”

한숨 쉬는 소리. 작지만 들린다.

나도 안다. 이게 좋지 않다는 거. 결혼 3년 차. 아직 아이 없다. 계획은 있다. 근데 이 패턴으로는 안 된다.

앉았다. 노트북 꺼냈다. “잠깐만, 인터뷰 정리 좀…”

“지금?”

“30분만.”

남편이 TV를 껐다. 이건 신호다. 할 말 있다는 거.

“여보, 우리 얘기 좀 하자.”

알았다. 이 대화가 올 줄.

개발자 남편 vs UX 기획자 아내

남편이 말했다. 차분하게.

“나는 6시에 퇴근해. 너도 6시 퇴근이잖아. 근데 왜 너는 항상 늦어?”

설명했다. 위에 쓴 이유들. 유저 인터뷰, 갑작스런 요청, 정리 시간.

“그건 알아. 근데 매일이잖아.”

매일은 아니다. 이번 주가 특히 심했다. 리서치 스프린트 기간이라.

“다음 주는 괜찮아. 인터뷰 끝나면…”

“지난달에도 그랬잖아. ‘이번만’이라고.”

맞다. 지난달도 그랬다. 그땐 신규 서비스 런칭 전이었다. AB테스트 데이터 모니터링하느라.

남편이 계속했다. “나는 코드 짜. 버그 고쳐. 근데 6시 되면 끝이야. 물론 온콜 있으면 다르지. 근데 평소엔 끝나. 왜 UX는 안 끝나?”

좋은 질문이다. 나도 궁금하다.

“UX는 사람 일이야. 사람은 예측 안 돼. 인터뷰이가 30분 늦으면 우리도 30분 늦어지고. 데이터 이상하면 다시 확인해야 하고.”

“그럼 일정을 여유롭게 잡든가.”

“그럼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들어.”

남편이 한숨 쉬었다. “그게 문제야. 너는 항상 남 눈치 봐.”

그건 아니다. 눈치가 아니라… 뭐지? 책임감? 완벽주의?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불안이다. “UX가 뭐 하는 팀이에요?” 소리 들을까 봐. 리서치 예산 깎일까 봐. “그냥 빨리 만들고 AB테스트 하죠” 말 나올까 봐.

말 못 했다. 너무 솔직한 거 같아서.

같은 회사, 다른 세계

재밌는 건 우리 같은 회사 다닌다는 거다.

출근 시간 같다. 9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회의 몇 개야?” 물어본다. 점심 가끔 같이 먹는다. 사내 카페에서.

근데 일하는 방식은 완전 다르다.

남편 팀은 2주 스프린트다. 지라 티켓 명확하다. “로그인 API 개선”, “결제 모듈 버그 수정”. 시작과 끝이 있다. 코드 리뷰 받고, 머지하고, 배포. 끝.

우리 팀은 애매하다. “유저 이탈률 개선”, “전환율 향상”. 목표는 있는데 정답은 없다. 리서치하고, 가설 세우고, 검증하고, 다시 리서치. 순환이다.

남편은 성과 측정이 명확하다. “이번 스프린트에 10개 머지했어.” “버그 5개 고쳤어.” 숫자다.

나는 애매하다. “유저 인터뷰 8명 했어. 인사이트 12개 도출.” 근데 그게 비즈니스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3개월 후에 알까? 아닐 수도.

남편 팀 회의는 30분. 스탠드업. “어제 뭐 했고, 오늘 뭐 하고, 블로커는 뭐.” 끝.

우리 팀 회의는 1시간. 아니, 1시간 30분.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게 뭘까요?” “유저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요?” 해석의 시간.

남편은 말한다. “답 없는 회의는 시간 낭비 아니야?”

아니다. UX에서는 ‘답 찾는 과정’ 자체가 일이다.

9년 차의 고민

솔직히 말하겠다.

나도 헷갈린다. 이게 맞나?

9년 차다. UX 기획 9년. 신입 때는 몰랐다. “유저를 위해!” 외쳤다. 밤새워도 괜찮았다. 리서치가 재밌었다.

지금은 피곤하다.

유저 인터뷰 100번 넘게 했다. 패턴이 보인다. “불편해요”, “복잡해요”, “잘 모르겠어요”. 비슷하다. 새로운 인사이트? 1년에 2~3개?

데이터 대시보드 매일 본다. GA4, Hotjar, Amplitude. 숫자가 바뀐다. 근데 왜 바뀌는지는… 가설일 뿐.

기획안 쓴다. 200페이지. PM한테 공유한다. “좋네요. 근데 개발 리소스가…” 반영 안 된다. 3개월 후에 축약 버전으로 나간다. 내 기획의 30%쯤?

그럼 나는 뭐 한 거지?

남편은 명확하다. 코드 짰다. 서버 올라갔다. 유저가 쓴다. 기여 명확.

나는? 간접적이다. “UX팀 덕분에 개선됐어요” 들어본 적 없다. “개발팀 고생했어요”는 맨날 들어도.

9년 차인데 성장하는 느낌이 없다. 신입 때는 매일 배웠다. 리서치 방법론, 분석 툴, 기획 프레임워크.

지금은? 같은 일 반복. 인터뷰하고, 분석하고, 기획하고, 안 되고. 루프.

후배들 보면 불안하다. 26살 주니어는 AI 툴 쓴다. ChatGPT로 퍼소나 초안 만들고, Midjourney로 무드보드 뚝딱. 나보다 빠르다.

“시니어는 경험이 다르죠.” 위안이다. 진짜? 경험이 경쟁력? AI가 100개 케이스 학습하면?

남편은 걱정 없다. 개발자는 수요 많다. 코딩 실력만 있으면 이직 쉽다. 연봉 올리기도.

UX 기획자? 채용 공고 적다. “경력 3~5년, Figma 능숙자, 리서치 가능자, 기획 경험 필수.” 요구는 많은데 자리는 적다.

9년 차의 선택지. 관리자 되거나, 전문가로 남거나.

관리자는 싫다. 사람 관리, 예산 관리, 정치. 그럴 거면 차라리 PM 했다.

전문가로 남으면? 10년 차, 15년 차 UX 기획자가 뭐 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없다. 다들 PM 전환하거나, 프리랜서 됐거나, 창업했거나.

내 미래가 안 보인다.

퇴근 후의 퇴근

남편이랑 대화 끝났다. 결론은 없었다. “이해해. 근데 힘들어” vs “나도 알아. 근데 어쩔 수 없어”.

노트북 껐다. 오늘은 인터뷰 정리 안 한다. 남편이랑 영화 봤다. 스릴러. 집중 안 됐다.

머릿속으로 오늘 인터뷰가 돌아갔다. “이 기능 왜 여기 있어요?” 유저가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나도 궁금하다. 기획한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예전에 누가 넣었대요.”

레거시. UX에도 레거시가 있다. 기능 레거시, 플로우 레거시, “원래 그랬어요” 레거시.

영화 끝났다. 11시. 씻고 누웠다. 남편은 금방 잤다. 나는 핸드폰 봤다. UX 커뮤니티 글.

“UX 주니어인데요, 포트폴리오 뭐 넣어야 할까요?”

“유저 리서치 없이 기획만 하는 거 정상인가요?”

“UX 기획자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전환 어떤가요?”

다들 고민한다. 나만 헷갈리는 게 아니구나.

댓글 달려다가 지웠다. 뭐라고 답하지? “9년 차도 헷갈려요”? 도움 안 된다.

핸드폰 내려놨다. 천장 봤다.

내일도 인터뷰다. 3명. 그리고 데이터 리뷰 회의. 그리고 기획안 수정. 그리고 퇴근은… 7시? 8시?

남편이 또 물을 것이다. “오늘은 제때 와?”

“응, 올게.” 말할 것이다. 근데 확신은 없다.

진짜 문제

문제는 늦게 퇴근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유저를 위해서? 9년 전엔 그랬다. 지금은… 습관?

회사를 위해서? 회사는 내가 8시까지 남아있길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워라밸 챙기세요” 말한다.

내 커리어를 위해서? 이게 커리어에 도움 되나? 야근한다고 승진 빠른 것도 아니고.

그럼 왜?

불안이다. 확신이 없어서.

“이 기획 맞아?” 모르겠다. 리서치 더 해야 할 것 같다.

“이 데이터 충분해?” 아닐 것 같다. 샘플 더 모아야 할 것 같다.

“이 인사이트 설득력 있어?” 글쎄. 사례 더 찾아야 할 것 같다.

개발자는 다르다. 코드 짠다. 테스트 돌린다. 통과하면 맞다. 실패하면 틀렸다. 명확하다.

UX는 회색지대다. “이게 최선인가?” 영원한 질문. 정답 없다.

그래서 계속한다.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다듬고, 한 번 더 검증하고.

결국 완벽주의다.

근데 완벽은 없다. UX에 완벽은 없다. 유저가 다 다르고, 맥락이 다 다르고, 정답이 없는데 완벽을 찾는다.

9년 동안 이랬다.

피곤하다.

남편에게 못한 말

남편한테 못한 말이 있다.

사실 부럽다.

남편 일은 명확하다. 목표, 과정, 결과. 선형적이다.

내 일은 순환이다. 돌고 돈다. “개선했어요” 하면 “더 개선해주세요” 돌아온다. 끝이 없다.

남편은 성취감 있다. 배포하면 보인다. “내가 만든 기능이 서비스에 올라갔어.” 뿌듯하다.

나는 애매하다. “내가 기여한 게 뭐지?” 간접적이다. “UX 개선으로 전환율 0.3% 올랐습니다” 근데 내 기여분은? 기획의 30%만 반영됐는데? 0.09%?

남편은 커뮤니티 있다. 개발자 밋업, 오픈소스, 스터디. 많다.

UX는 적다. 있긴 있다. 근데 대부분 주니어 위주. 시니어 UX 기획자들은 뭐 하나? 안 보인다.

남편은 이직 쉽다. 링크드인에 헤드헌터 메시지 쌓인다.

나는? 1년에 1~2번? “적합한 포지션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교 멘트.

부럽다. 솔직히.

근데 말 못 한다. “나도 개발자 부러워” 하면 섭섭해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인정하기 싫어서. 9년 했는데 이제 와서 “내 선택 후회해” 하기는.

그럼에도

근데 이상하게 못 그만둔다.

매일 피곤하고, 불안하고, 확신 없는데. 그만둘 생각은 안 든다.

왜일까?

어제 인터뷰했던 유저 생각난다. 50대 아주머니. 우리 서비스 쓰는데 계속 헤맸다. “이게 어디 있어요?” 물었다. 메뉴 3depth에 숨어있었다.

“아이고, 어렵네.” 한숨 쉬셨다.

미안했다. 우리가 잘못 만들어서.

인터뷰 끝나고 바로 기획안 수정했다. 메뉴 구조 개선. 3depth → 2depth. PM한테 공유했다. “다음 스프린트에 반영할게요.”

2주 후 배포됐다. 다시 그 유저한테 연락했다. “한 번 더 써보실 수 있으세요?”

“어머, 이제 찾기 쉽네요.”

그 순간.

그 순간 때문에 한다.

자주는 아니다. 1년에 몇 번? 근데 그게 있다.

“이거 덕분에 편해졌어요.”

“전보다 훨씬 낫네요.”

“드디어 이해됐어요.”

그 말 듣는 순간. 9년 치 야근이 괜찮아진다. 잠깐이지만.

개발자는 코드 짓는 재미가 있다. 로직 맞춰지는 재미. 버그 잡는 쾌감.

UX 기획자는 유저 반응이다. “이제 됐네요” 그 말. 그게 보상이다.

적다. 불확실하다. 간접적이다. 근데 있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내일 아침

알람 맞췄다. 7시.

내일도 출근한다. 남편이랑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오늘 일찍 와” 할 것이다. “응” 대답할 것이다.

근데 확신은 없다.

인터뷰 일정 봤다. 3명. 마지막이 6시 30분. 1시간 걸리면 7시 30분. 정리까지 하면 8시.

또 늦는다.

남편한테 미리 말해야 하나. “오늘도 늦을 것 같아.” 아침에 말하기는 좀 그렇다.

점심 때 말할까. “저녁 인터뷰 있어서…” “또?” 들을 게 뻔하다.

그냥 6시에 말할까. “30분만 더” 그것도 매번 하던 건데.

어렵다. 일보다 이게 더 어렵다.

유저 설득하는 건 쉽다. 데이터 보여주고, 인사이트 설명하고, 개선안 제안. 논리적이다.

남편 설득은 어렵다. “당신도 일 이해해줘” vs “나도 당신 이해해. 근데 매일은 힘들어”. 둘 다 맞다.

정답 없다. UX 기획처럼.


결국 늦게 들어갈 것이다. 남편은 소파에 있을 것이다. “어, 왔어?” 할 것이다. 나는 “응, 미안”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반복. 9년 차 UX 기획자의 일상이다. 화려하지 않다. 그냥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