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인터뷰 중 침묵이 길어질 때, 나는 뭘 하나?
- 08 Dec, 2025
침묵이 5초 넘어가면
오늘 유저 인터뷰 3건 잡혀 있었다. 2시, 3시 반, 5시. 2시 인터뷰이는 30대 남성, 우리 서비스 3년째 쓰는 파워유저다.
질문 던졌다. “이 기능 언제 주로 쓰시나요?”
대답이 안 나온다. 5초. 10초. 15초.
초보 때 나였으면 벌써 다음 질문 던졌다. “아 혹시 출퇴근 시간이요? 점심시간이요?” 이렇게. 지금은 안다. 침묵도 데이터라는 걸.

20초쯤 됐을 때 그가 말했다. “음… 사실 이 기능, 쓰긴 쓰는데 불편해요. 근데 대체할 게 없어서.”
바로 이거다. 침묵 뒤에 나오는 진짜 답.
빨리 답하는 건 보통 표면적인 생각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답. “네, 자주 써요. 편해요.” 이런 거. 근데 침묵 뒤의 답은 다르다. 본인도 정리 안 된 생각. 불편하지만 말하기 애매한 것들.
9년 인터뷰 진행하면서 배운 거다. 침묵을 견디는 기술.
침묵의 종류는 다르다
모든 침묵이 같지 않다. 경력 쌓이면서 구분하게 됐다.
생각 중인 침묵: 눈동자가 움직인다. 뭔가 떠올리려고 애쓴다. 이건 기다려야 한다. 절대 방해하면 안 된다. 이 침묵 뒤에 인사이트 나온다.
불편한 침묵: 몸이 경직된다. 시선이 아래로 간다. 질문이 너무 private했거나 본인 행동의 모순을 깨달은 순간. “괜찮아요, 편하게 답하셔도 돼요” 이런 식으로 안심시켜야 한다.
모르겠다는 침묵: 어깨를 살짝 으쓱한다. 표정이 ‘글쎄’ 다. 이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럼 최근에 이 서비스 쓰셨을 때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구체적인 경험으로 전환.
정치적인 침묵: 회사 내부 유저 인터뷰할 때 나온다. “이 프로세스 어떠세요?” 물으면 침묵. 불만 있는데 말 못 하는 거다. 누가 볼까봐. “다른 분들은 이런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하면서 익명성 보장해줘야 답 나온다.

오늘 2시 인터뷰이는 생각 중인 침묵이었다. 눈동자 움직임으로 알았다. 기다렸다. 그리고 진짜 답을 얻었다.
후배는 못 견딘다
작년에 신입 1명 들어왔다. UX 전공, 열정 넘친다. 인터뷰 동행시켰다.
내가 질문 던지고 침묵이 시작됐다. 3초. 5초. 후배가 끼어든다. “아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요?”
인터뷰이가 “아 네네” 하고 넘어간다. 후배는 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다. 진짜 답은 못 들었다는 걸.
인터뷰 끝나고 피드백 줬다. “침묵을 기다려봐.” 후배가 묻는다. “몇 초요?”
이게 설명이 안 된다. 10초? 15초? 케바케다. 인터뷰이 표정 봐야 한다. 생각하는 중인지 불편한지. 근데 이걸 어떻게 가르치나.
“일단 10초는 기다려봐. 네가 불편해도.” 이렇게밖에 못 말한다.

후배는 한 달 동안 연습했다. 처음엔 5초도 못 견뎠다. 지금은 10초는 기다린다. 근데 아직 침묵의 종류는 못 읽는다. 그건 경험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3년 차 때까지는 못 견뎠다. 침묵이 두려웠다. 인터뷰 망치는 것 같았다. “제가 질문을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 들었다.
지금은 안다. 침묵은 망치는 게 아니라 기회다.
침묵을 채우는 기술
침묵 중에 나는 뭘 하나.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눈 맞춤 유지: 너무 뚫어지게 보면 부담 준다. 적당히. 노트에 시선 내렸다가 다시 올린다. “기다리고 있어요” 라는 신호.
메모: 진짜 메모하는 건 아니다. 방금 질문이나 키워드 적는 척한다. 인터뷰이가 부담 덜 느낀다. 침묵이 자연스러워진다.
고개 끄덕임: 생각 중인 침묵일 때. 살짝 끄덕인다. “괜찮아요, 천천히요” 메시지 전달.
물 마시기: 10초 넘어가면 물 한 모금. 인터뷰이도 따라 마신다. 리듬 전환. 긴장 풀린다.
질문 재구성 준비: 15초 넘어가면 머릿속으로 다음 질문 준비한다. 각도 바꿔서. 구체적 사례로. 근데 20초 전까진 안 던진다.
오늘 3시 반 인터뷰이는 침묵이 20초 갔다. 나는 노트 보면서 기다렸다. 끄덕였다. 물 마셨다.
그리고 인터뷰이가 말했다. “사실 이 기능… 제 업무 프로세스랑 안 맞아요. 근데 팀장님이 쓰라고 해서.”
진짜 문제 발견했다. 기능 자체가 아니라 조직 문제. 침묵 견뎌서 얻은 인사이트.
데이터가 안 보여주는 것
GA4 본다. 이 기능 사용률 38%. 나쁘지 않다. “사용자 만족도 조사” 했다. 5점 만점에 3.8점. 평균이다.
근데 인터뷰하면 다른 얘기 나온다. “어쩔 수 없이 써요.” “대체재가 없어서요.” “불편한데 익숙해졌어요.”
이런 건 수치로 안 나온다. 설문에도 안 쓴다. 침묵 뒤에 나온다.
기획팀 회의에서 말한다. “사용률은 괜찮은데 유저들 만족도는 낮습니다.”
PO가 묻는다. “만족도 조사에선 3.8점이던데요?”
“인터뷰에서 다른 맥락이 나왔어요. 수치와 정성 리서치 결과가 달라요.”
데이터는 What을 보여준다. 인터뷰는 Why를 보여준다. 근데 Why는 침묵 뒤에 있다.
작년에 리뉴얼 프로젝트 했다. AB 테스트 결과 B안이 15% 더 좋았다. 근데 인터뷰하니까 “B안이 빨라서 좋긴 한데 뭔가 불안해요” 나왔다.
불안? 수치에 안 나온다. 더 물었다. 침묵 10초. “너무 간단해서… 내가 뭘 한 건지 확신이 안 서요.”
피드백 반영했다. 확인 메시지 하나 추가. 숫자는 그대로인데 불안감 사라졌다. 침묵 뒤 인사이트로 개선한 거다.
침묵이 주는 시간
인터뷰이가 침묵할 때, 나도 생각한다.
“이 질문이 맞나?” “다음 질문 각도를 어떻게 잡지?” “방금 대답에서 뭘 캐치했지?”
침묵은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이다. 리듬 조절. 인터뷰는 말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잘 듣는 거다. 침묵도 듣는 거다.
초반 경력 때는 1시간 인터뷰에 질문 20개 준비했다. 다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0개 준비한다. 근데 3개밖에 안 쓴다. 나머지는 대답 듣고 즉석에서 만든다.
침묵 사이에 다음 질문이 보인다. “아, 이 사람은 이 부분이 불편했구나. 그럼 이걸 물어봐야겠다.”
오늘 5시 인터뷰이는 20대 여성. 서비스 처음 써봤다. “첫인상이 어땠어요?” 물었다. 침묵.
8초쯤 됐을 때 “음… 복잡했어요. 근데 신기했어요.”
“복잡한데 신기하다?” 메모했다. 다음 질문 떠올랐다. “신기했던 부분이 뭐였어요?”
“다른 서비스는 다 자동인데, 여기는 제가 직접 설정하잖아요. 처음엔 귀찮았는데 하다 보니까 재밌었어요.”
진짜 인사이트다. 온보딩 개선 방향 잡혔다. “자동화보다 커스터마이징의 재미” 이걸 강조해야 한다.
침묵 8초가 다음 프로젝트 방향 정했다.
회사는 침묵을 못 기다린다
문제는 조직이다. 리서치 일정 잡으면 상사가 묻는다. “인터뷰 몇 명이요?” “일주일이면 돼요?”
인터뷰 10명 하려면 일정 잡는 데만 3일. 진행하는 데 5일. 분석하는 데 3일. 최소 2주 필요하다.
“2주요? 그냥 설문 돌리는 게 빠르지 않아요?”
설문은 빠르다. 근데 얕다. 침묵이 없다. 정해진 답만 체크한다. Why는 모른다.
기획팀 회의에서 맨날 싸운다. “리서치 결과 기다리면 일정 밀려요.” “근데 리서치 안 하면 방향 틀리잖아요.”
타협안 낸다. “1차로 빠르게 만들고 AB 테스트 하면서 인터뷰 병행할게요.” 이것도 방법이다. 근데 매번 이러면 리서치 가치가 떨어진다.
작년에 큰 프로젝트 있었다. 예산 5억. 일정 6개월. 킥오프 때 말했다. “유저 리서치 먼저 하고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임원이 답했다. “리서치는 만들면서 하죠. 일정이 빠듯해요.”
결국 리서치 없이 시작했다. 3개월 지나서 베타 나왔다. 내부 테스트 결과 별로. 그제야 인터뷰 했다. “방향이 틀렸어요.”
2개월 뒤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리서치 했으면 안 돌아갔을 일.
회사는 빠른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방향 틀리면 더 느리다. 침묵을 못 기다리는 조직은 비효율적이다.
침묵 뒤의 말은 무겁다
인터뷰 끝나고 녹취록 정리한다. 오늘 3건. 총 180분. 녹취록 40페이지.
침묵은 녹취록에 “(침묵)” 이렇게 표시된다. 근데 이게 중요하다. 침묵 전후 맥락 본다.
“이 기능 만족하세요?” “(침묵 12초)” “만족하는데… 음… 불편한 점도 있어요.”
침묉 없이 바로 답했으면 “네, 만족해요” 끝났을 거다. 12초 침묵이 진짜 답을 끌어냈다.
녹취록 읽으면서 침묵 부분 형광펜 칠한다. 노란색. 그리고 앞뒤 문맥 다시 읽는다. 인사이트가 거기 있다.
기획안 쓸 때 인용한다. “유저 A는 12초 생각 후 ‘만족하는데 불편한 점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기능 자체보다 프로세스 문제를 시사합니다.”
PO가 읽고 묻는다. “12초가 중요해요?” “네. 바로 답 안 나온 건 본인도 혼란스럽다는 뜻이에요.”
침묵도 데이터다. 이걸 이해 못 하는 사람 많다. 숫자만 본다. “사용률 38%”, “만족도 3.8점”. 근데 침묵은 숫자 아래 맥락을 보여준다.
멘토링 때 못 전하는 것
후배들 멘토링한다. 분기에 한 번. 주로 커리어 고민, 스킬 질문.
지난달 멘토링 때 한 후배가 물었다. “인터뷰 잘하려면 뭘 해야 해요?”
대답했다. “질문 리스트 잘 짜고, 경청하고, 녹취록 정리 꼼꼼히 하고.”
근데 정작 중요한 건 못 말했다. 침묵을 견디는 기술. 이건 말로 안 된다. 직접 해봐야 안다.
“침묵도 중요해요” 말하면 “아, 네” 한다. 근데 이해 못 한다. 실전에서 5초도 못 기다린다. 불안해서.
나도 그랬다. 3년 차 때까지 침묵이 두려웠다. 시간 가면서 배웠다. 침묵 뒤에 진짜 답이 나온다는 걸.
이걸 어떻게 가르치나. “일단 해봐” 밖에 못 한다. 불친절한 조언이다. 근데 다른 방법이 없다.
작년에 스터디에서 발표했다. “인터뷰 스킬업” 주제. 침묵 얘기 했다. 질문 나왔다. “침묵이 너무 길면 어떡해요?”
“20초 넘어가면 질문 바꿔보세요.” “20초요? 너무 긴 거 아니에요?” “처음엔 그렇게 느껴져요. 근데 익숙해지면 괜찮아요.”
설득력 없는 답이다. 근데 사실이다. 20초는 길다. 근데 그 20초가 프로젝트 방향 바꾼다.
침묵이 편해졌을 때
요즘은 침묵이 편하다. 오히려 좋다. 인터뷰 리듬이 느려진다. 여유 생긴다.
초보 때는 1시간 인터뷰가 급했다. 질문 던지고 답 듣고 다음 질문. 빠르게. 많이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1시간에 질문 5개만 해도 괜찮다. 깊게 판다. 침묵 기다린다. 추가 질문 던진다. 맥락 이해한다.
오늘 2시 인터뷰이랑 1시간 10분 얘기했다. 질문은 6개 했다. 침묵은 총 8번. 가장 긴 침묵 23초.
23초 침묵 뒤에 나온 답이 전체 인터뷰에서 가장 좋았다. “사실 이 서비스… 동료가 쓰니까 저도 쓰는 거예요. 안 쓰면 뭔가… 뒤처지는 것 같아서.”
네트워크 효과. 이게 진짜 retention 이유였다. 기능이 아니라 사회적 압력. 이런 건 설문에 안 나온다. 데이터에 안 잡힌다. 23초 침묵 뒤에 나왔다.
인터뷰 끝나고 인터뷰이가 말했다. “오늘 제 생각 정리된 것 같아요. 감사해요.”
이게 좋은 인터뷰다. 내가 답 얻는 것만이 아니라 인터뷰이도 생각 정리하는 시간. 침묵이 그 시간을 준다.
9년 차의 숙제
경력 9년. 인터뷰는 수백 건 했다. 침묵 견디는 건 이제 자연스럽다.
근데 여전히 어렵다. 침묵의 미묘한 차이 읽기. 5초 침묵이랑 15초 침묵은 다르다. 생각 중인 침묵이랑 회피하는 침묵도 다르다.
매번 완벽하게 못 읽는다. 가끔 놓친다. “아, 저 침묵 때 더 기다렸어야 했는데.” 후회한다.
그리고 후배들한테 전하는 게 어렵다. “침묵을 기다려” 말은 쉽다. 실천은 어렵다. 경험으로 체득해야 한다.
요즘 고민은 이거다. 시니어로서 뭘 더 줄 수 있나. 스킬은 가르쳤다. 프로세스도 정리했다. 근데 “감각” 은 못 가르친다.
침묵 읽는 감각. 질문 타이밍 잡는 감각. 이건 말로 안 된다. 같이 인터뷰 다니면서 보여줘야 한다. 근데 시간이 없다.
내년에 리드 제안 들어왔다. 매니저 가는 거다. 그럼 인터뷰 직접 할 시간 줄어든다. 고민이다. 관리만 할 건가. 현장 감각 잃을 건가.
9년 쌓은 감각이 아깝다. 침묵 읽는 기술, 맥락 파악하는 눈. 이걸 계속 쓰고 싶다. 후배들한테 전하고 싶다.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그냥 계속 인터뷰 하는 수밖에.
침묵은 데이터다. 9년 걸려서 배운 거다. 10년 차엔 뭘 배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