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 보니 UX 트렌드가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다

후배들 보니 UX 트렌드가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다

월요일 아침, 후배 포트폴리오

출근했다. 9시. 메일함에 포트폴리오 하나 들어와 있다. 신입 지원자.

열어봤다. 멈췄다.

“AI 기반 퍼소나 생성”, “Chat GPT로 유저 인터뷰 시뮬레이션”, “Figma AI 프로토타입 자동화”.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포트폴리오 본 적 없다. 우리 팀 신입이 1년 전에 낸 건 Maze 테스트 결과랑 인터뷰 녹취록 분석이었다.

커피 마셨다. 두 번째. 뭔가 불편하다. 이게 질투인가. 불안인가.

9년 차다. 경력이 무색해지는 기분.

점심시간, 후배와 대화

후배랑 식당 갔다. 3년 차. “언니, 요즘 리서치 어떻게 해요? GPT 활용하세요?”

”…아직은 직접 인터뷰 위주야.”

“아 저는 요즘 GPT한테 먼저 물어봐요. 가설 검증할 질문 리스트 만들고, 예상 답변 시뮬레이션하고. 시간이 반으로 줄어요.”

반으로.

“근데 실제 유저랑 다르지 않아?”

“맞아요. 근데 1차 필터링은 되잖아요. 인터뷰 대상자 모집 전에 방향성 잡고.”

논리적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Figjam도 이제 AI로 인사이트 자동 클러스터링 되던데. 언니는 안 써봤어요?”

”…아직.”

“편해요. 포스트잇 200개 붙이면 자동으로 그룹핑해주고, 키워드 추출하고.”

내가 3시간 걸려 하던 걸.

밥 먹었다. 맛은 모르겠다.

오후 3시, 리서치 결과 정리

책상 앞. Notion 켰다. 지난주 유저 인터뷰 5명 녹취록 정리 중.

2시간째다. “사용자는 로그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비밀번호 재설정 플로우가…”

타이핑한다. 지운다. 다시 쓴다. 문장 하나하나 고민한다. 뉘앙스 중요하니까.

옆자리 후배. 3년 차 아닌 다른 애. “언니 저 Otter.ai로 녹취록 자동 전사하고 GPT한테 인사이트 추출 시켰어요. 10분 걸렸어요.”

10분.

“정확해?”

“80%는 맞아요. 나머지 20%만 제가 보정하면 되고.”

계산했다. 2시간이 30분이 된다.

그럼 나머지 1시간 30분은 뭐 하지?

더 많은 인터뷰? 더 깊은 분석? 아니면 그냥 내가 느린 거?

마우스 잡은 손이 멈췄다.

저녁 6시, 퇴근 전 생각

정리 안 됐다. 오늘 하루.

슬랙에 UX 커뮤니티 글 올라왔다. “AI 시대, UX 리서처의 역할은?”

댓글 스크롤.

“이제 단순 리서치는 AI가 하고 우리는 전략만” “인사이트 해석은 여전히 사람 몫” “아니 요즘 GPT가 해석도 잘 하던데” “그래도 유저 공감은 AI 못함”

공감.

내가 9년 동안 쌓은 게 뭔가 생각했다. 유저 인터뷰할 때 미묘한 표정 변화 캐치하는 것. “괜찮아요” 라고 말하지만 목소리 톤이 내려가는 거. 설문에는 “만족”인데 사용 로그는 5분 만에 이탈하는 거.

이건 데이터만으로 안 보인다. GPT는 못 본다. 아직은.

근데 얼마나 “아직”일까?

집 가는 길, 판교역

지하철 탔다. 황선선. 옆자리 사람 핸드폰 힐끔.

토스 앱이다. 또 개편됐네. “AI 추천 금융 상품” 메뉴 생겼다.

작년엔 없었다.

앱스토어 리뷰 봤다. “AI 추천 신기하네요” “근데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알고리즘이 날 모르나봐요”

맞다. 이거다.

AI는 패턴은 찾는다. 빠르게. 근데 맥락은 모른다. 아직은.

30대 여성, 연봉 7000만원, 판교 거주. 데이터로는 “공격적 투자 성향” 나온다.

근데 인터뷰 해보면? “애 낳으면 일 그만둘 수도 있어요. 안정적으로 가고 싶어요.”

이 한 문장. 데이터엔 없다.

밤 10시, 집에서

남편이랑 맥주 마셨다. “오늘 왜 그래. 표정 안 좋아.”

“후배들 포트폴리오 봤는데, 다들 AI 쓰더라. 나도 배워야 하나.”

“당연하지. 근데 너 9년 동안 쌓은 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게… 사라지는 것 같아서.”

“너 작년에 그 프로젝트. 리서치 결과로 서비스 방향 180도 바꾼 거. AI가 했어?”

아니다. 내가 했다.

유저 30명 인터뷰했다. 절반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근데 쓰는 모습 관찰하니까 다들 우회 플로우 쓰고 있었다.

“만족은 하는데 불편은 해요. 익숙해서 쓰는 거지, 좋아서 쓰는 게 아니에요.”

이 인사이트. 데이터론 안 나왔다. 설문으론 안 나왔다.

이게 9년 차가 보는 거다.

“그럼 됐잖아. AI는 도구야. 너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맥주 마셨다. 좀 풀렸다.

화요일 오전, 새로운 접근

출근했다. 9시 10분. 어제보다 마음이 다르다.

Figma AI 플러그인 깔았다. Chat GPT Plus 구독했다. Otter.ai 무료 체험 시작했다.

배우기로 했다. 도구는 도구니까.

근데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예전: 인터뷰 → 전사 → 분석 → 인사이트 지금: GPT로 가설 수립 → 인터뷰 (핵심만) → AI 전사 → 내가 해석

시간은 줄이되, 깊이는 유지.

후배한테 슬랙 보냈다. “저번에 말한 GPT 활용법 좀 알려줘. 커피 살게.”

“오 좋아요 언니! 근데 저도 언니한테 배우고 싶은 거 있어요. 인터뷰할 때 어떻게 저렇게 질문 깊게 파고 들어가요?”

교환이다. 나쁘지 않다.

수요일 점심, UX 커뮤니티 모임

판교 카페. UX 모임. 시니어 5명 모였다. 다들 7년 차 이상.

주제: “AI 시대 UX 리서처의 역할”

A: “솔직히 불안하다. 리서치 자동화되면 우리 밥그릇…” B: “근데 회사는 AI 쓰면 리서처 줄일 생각하잖아.” C: “그래도 해석은 사람이 해야지. 데이터만으론 부족해.”

내가 말했다.

“근데 우리가 변해야 하는 거 아닐까. AI가 못 하는 걸 더 잘하는 거.”

“예를 들면?”

“맥락 이해. 비언어 캐치. 이해관계자 설득. 전략 수립.”

“그건 원래 우리가 하던 건데.”

“맞아. 근데 이제 그게 핵심 역할이 되는 거지. 전사나 분석 같은 건 AI한테 맡기고.”

B가 고개 끄덕였다. “리서처에서 인사이트 스트래티지스트로.”

그 표현 마음에 든다.

목요일 오후, 실전 적용

신규 프로젝트 킥오프. “O2O 배송 서비스 UX 개선”

예전 방식이면:

  • 1주: 유저 30명 인터뷰 설계
  • 2주: 인터뷰 진행
  • 3주: 전사 및 분석
  • 4주: 인사이트 도출

4주 걸렸다.

새 방식:

  • 1일: GPT한테 경쟁사 리서치, 예상 페인포인트 추출
  • 2일: 가설 기반 설문 (200명), AI 분석
  • 3-5일: 핵심 이슈 중심 심층 인터뷰 10명
  • 6일: Otter 전사 + 내가 해석
  • 7일: 인사이트 도출

1주.

대신 뭐가 달라졌나? 시간을 줄인 게 아니라 배분을 바꿨다.

단순 작업: 5일 → 1일 깊은 사고: 2일 → 6일

PM이 물었다. “일주일이면 나와요?”

“응. 대신 중간에 방향 바뀌면 다시 파야 해. 깊게 파니까.”

“좋아요. 빠르면서 깊으면 최고죠.”

회의 끝났다. 뿌듯하다.

금요일 저녁, 후배 멘토링

신입 후배랑 1:1. “언니 저 요즘 고민이에요.”

“뭔데.”

“AI 너무 잘하잖아요.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년 전 나도 비슷한 고민 했다. 그땐 “노코드 툴이 다 하는데 기획자가 필요해?” 였다.

“너 지난번 리서치 보고서 봤어. 좋았어.”

“감사합니다. 근데 그거 GPT 도움 많이 받았어요…”

“알아. 근데 마지막 인사이트 3개. ‘유저는 빠름보다 정확함을 원한다’, ‘에러 메시지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신뢰는 첫 경험에서 결정된다’. 이거 GPT가 준 거야?”

”…아니요. 제가 인터뷰하면서 느낀 거요.”

“그거야. 그게 너만 할 수 있는 거.”

후배 표정이 밝아졌다.

“AI는 패턴을 찾아. 근데 의미는 네가 만드는 거야. 데이터는 ‘What’을 주고, 넌 ‘Why’를 찾는 거지.”

“아… 그렇네요.”

“도구는 계속 바뀔 거야. Figma도, GPT도, 다음엔 또 뭐가 나올지 몰라. 근데 본질은 안 바뀌어. ‘유저를 이해하는 것’. 그거 잃지 마.”

후배가 고개 끄덕였다. 나도 다시 확인했다.

주말, 개인 정리

카페 왔다. 집 근처. 노트북 열었다. 개인 정리 시간.

“UX 리서처로 9년. 앞으로 9년은?”

적었다.

변한 것:

  • 도구: 종이 설문 → 온라인 → AI 분석
  • 속도: 한 달 → 일주일
  • 데이터: 수동 수집 → 자동 수집
  • 트렌드: 매년 바뀜

안 변한 것:

  • 유저는 여전히 복잡하다
  • 맥락이 중요하다
  • “왜?”가 핵심이다
  • 공감이 시작이다

9년 차의 가치:

  • 빠른 패턴 인식
  • 숨은 불편함 캐치
  • 이해관계자 설득력
  • 전략적 사고

AI가 못 하는 것:

  • 눈빛 읽기
  • 침묵의 의미
  • 조직 정치
  • 창의적 도약

내 역할:

  • 데이터 생산자 → 인사이트 번역가
  • 리서치 실행자 → 전략 설계자
  • 단순 분석 → 의미 부여

커피 마셨다. 아메리카노.

작년과 올해가 다른 건 맞다. 내년은 또 다를 거다.

근데 괜찮다.

도구는 배우면 된다. 본질을 지키면서.


9년 차가 1년 차 될 순 없지만, 1년 차처럼 배울 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