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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 12 Dec, 2025
아이 계획과 경력 개발, 양쪽을 원한다는 게 죄인가
34세, 두 개의 타임라인 회의실에서 나왔다. 2026년 로드맵 논의. 내가 맡을 프로젝트가 3개다. 그 중 하나는 내년 하반기 런칭. 남편이 물었다. "올해 안에 시작할까?" 아이 얘기다. 나는 로드맵을 떠올렸다. 내년 하반기면 출산 휴가와 겹친다. "조금만 미루자." 내가 말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안다. 이게 세 번째 미루기라는 걸.노트에 적었다. 2025년 목표.Q1: 신규 서비스 UX 리서치 완료 Q2: 리더십 교육 이수 Q3: 컨퍼런스 발표 Q4: 팀장 승진 도전그 옆에 또 적었다.34세 7개월 난임 확률 상승 구간 진입 산부인과 권장: "빠를수록"두 개의 리스트가 나란히 있다. 둘 다 "빠를수록"이다. 선배의 케이스 스터디 UX 커뮤니티 모임에 갔다. 40대 초반 선배를 만났다. 8년 전 출산 후 복귀했다는 분. "복귀는 했는데." 선배가 말했다. "프로젝트 배정이 달라지더라.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맡고." 나는 물었다. "왜요?" "야근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출장 보내기 미안하다고. 배려래." 선배는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3년 지나니까 연봉 격차가 벌어져 있더라. 동기는 팀장이고 나는 시니어 그대로."또 다른 선배도 있다. 출산 안 하고 커리어에 집중한 분. 이사까지 올랐다. "후회 없어요?" 누군가 물었다. "있지." 선배가 답했다. "근데 둘 다는 안 됐을 것 같아." 회의실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둘 다 안 된다는 게 진짜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데이터를 찾아봤다. 여성 관리자 비율, 출산 후 복귀율, 승진 소요 기간. 숫자는 명확했다. 출산 휴가 다녀온 여성의 평균 승진 지연: 2.3년. 복귀 후 이직률: 38%. 5년 내 관리자 도달 확률: 23%. 유저 리서치하듯 데이터를 봤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유저였다. 회의실의 공기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이었다. 12개월짜리 대형 과제. "UX 리드는 민지씨가." 본부장이 말했다. 나를 봤다. "괜찮죠?" "네." 대답했다. 그때 옆 팀장이 말했다. "민지씨 요즘 어때요? 건강은?"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건강. 그 단어의 의미를 모두가 알았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12개월이면 내년 말까지인데." 팀장이 덧붙였다. "중간에 공백 생기면 안 되니까." 공백. 출산 휴가를 그렇게 불렀다.본부장이 정리했다. "민지씨 괜찮다니까 진행하죠." 미팅이 끝났다.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봤다. 34세 7개월의 얼굴. 생각했다. 내가 남자였으면 이 질문을 받았을까. "건강은 어때요?" "중간에 공백 생기면 안 되니까." 노트에 적었다.대형 프로젝트 수주: 커리어에 플러스 12개월 일정: 아이 계획 1년 연기 연기하면: 35세 7개월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35세 이후엔 확률이 확 떨어져요." 확률. 내가 매일 다루는 단어였다. A/B 테스트, 전환율, 신뢰구간. 그런데 이번엔 내 몸의 확률이었다. 남편과의 대화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물었다. "프로젝트 받았어?" "응. 12개월짜리." "그럼 또 미뤄지네." 젓가락을 놓았다. "미안." "아니, 미안할 건 없지." 남편이 말했다. "근데 민지야. 우리 언제 할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이 계속했다. "나는 괜찮아. 근데 너는 시간이 있잖아. 생물학적으로." "알아."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럼?" "모르겠어. 진짜로." 남편은 개발자다. 그에게도 커리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 가져도 커리어가 끊기지 않는다. 출산 휴가 8일. 그게 남자의 육아 휴직이다. 회사는 그를 "책임감 있다"고 칭찬한다. 8일 쉬고 돌아오니까. 나는? 90일이 최소다. 육아 휴직까지 하면 1년. 그 1년이 경력의 구멍이 된다. "공평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뭐가?" "다. 전부." 남편은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후배의 질문 후배가 커피를 사왔다. 상담 요청이었다. "선배."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어떻게 결정하실 거예요?" "뭘?" "아이요. 다들 선배 임신 준비 중이라고." 나는 웃었다. "소문이 빠르네." "저도 고민이에요." 후배가 말했다. "올해 31인데. 남자친구는 결혼하자는데." "네 목표가 뭔데?" "UX 리드 하고 싶어요. 선배처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후배가 계속 물었다. "가능할까요? 둘 다?"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답을 찾는 중이야." "선배도요?" "응. 나도." 후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롤모델이었는데 나도 답이 없으니. 생각했다. 내가 후배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뭘까. 성공적인 양립? 아니면 정직한 고민? "근데 말이야." 내가 말했다. "답이 없다는 게 답일 수도 있어." "무슨 뜻이에요?" "완벽한 타이밍은 없어. 어떤 선택을 하든 뭔가는 포기해야 해. 그게 현실이야." 후배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덜 후회할 쪽을 선택하려고 해." 컨퍼런스에서 UX 컨퍼런스에 갔다. 해외 연사가 발표했다. 40대 여성 CPO. "I had my first child at 36." 그가 말했다. "People said I was late. But I wasn't ready before." 청중이 집중했다. "I took 6 months off. Came back. Took another 6 months for second child. Came back again." "Did it slow my career? Yes. Did I regret it? No." 박수가 쏟아졌다. 질의응답 시간. 내가 손을 들었다. "How did you deal with the gap?" 내가 물었다. "The career gap?" 연사가 웃었다. "I didn't deal with it. I embraced it." "What do you mean?" "The gap isn't empty. You learn. You grow. Just differently." "But the company—" "The company that penalizes you for having a life?" 그가 말했다. "Maybe that's not the right company." 나는 메모했다. "Not the right company." 그런데 생각했다. 한국에 그런 회사가 몇 개나 될까. 데이터와 현실 사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유저 리서치 보고서를 열었다. 30대 여성 직장인 100명 인터뷰. 주요 페인 포인트:"커리어와 출산,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느낌" 87% "회사의 지원 제도 있으나 실효성 의심" 76% "복귀 후 업무 배제 경험" 64% "육아와 야근 병행의 어려움" 92%인사이트:제도는 있다. 하지만 문화는 없다. "배려"가 오히려 차별이 된다.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보고서를 작성했다. 추천 사항:육아 휴직 후 복귀 프로그램 강화 유연 근무 실질적 보장 승진 평가 시 휴직 기간 불이익 제거 남성 육아 휴직 의무화보고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후 피드백이 왔다. "좋은 인사이트입니다. 다만 실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산과 인력 문제로." 나는 웃었다. 유저의 니즈는 명확한데 솔루션은 없다. 내가 매일 싸우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유저였다. 그리고 솔루션은 여전히 없었다. 병원에서 산부인과에 갔다. 정기 검진. 의사가 물었다.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아직요." "나이를 생각하면." 의사가 말을 아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알아요." "난임 검사는 받아보셨어요?" "아직이요." 의사가 검사 신청서를 건넸다. "한번 받아보세요. 미리 아는 게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청서를 봤다. 항목이 10개가 넘었다. 생각했다. 검사를 받으면 결과를 알게 된다. 그럼? 더 불안해질 것 같았다. 검사를 안 받으면? 모르는 채로 시간이 간다. 둘 다 두려웠다. 남편의 제안 주말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 계획 세우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임라인 그려보는 거야. 네가 UX 기획할 때처럼." 남편이 노트를 펼쳤다. 타임라인을 그렸다. 현재: 2025년 3월민지 프로젝트: ~2026년 3월 승진 심사: 2025년 12월시나리오 1: 프로젝트 후 임신2026년 4월 임신 시도 2027년 1월 출산 민지 나이: 36세시나리오 2: 지금 임신2025년 하반기 출산 프로젝트 리드 포기 승진 2~3년 지연남편이 물었다. "어떤 게 나아?" 나는 답하지 못했다. 둘 다 포기가 있었다. "아니면."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육아 휴직 할까?" "너도 커리어 있잖아." "근데 너만큼 타이트하진 않아."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슬펐다. 결국 여자가 더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미안해. 이런 고민 너만 하게 해서."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웃었다. "여자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선배에게 전화 밤에 전화했다. 8년 전 출산한 선배. "선배." 내가 물었다. "후회해요?" "뭘?" "낳은 거요." 선배가 웃었다. "애 키우는 건 안 후회해. 근데 커리어는 후회하지." "둘 다 잡을 순 없었나요?" "없었어. 적어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선." 침묵. "근데 말이야." 선배가 말했다.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 "어떻게요?" "그때 포기 안 했으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 근데 상상이 안 돼." "왜요?" "애 낳고 나는 사람이 바뀌었거든. 우선순위도 바뀌고." 선배가 계속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선택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 "차이가 있어요?" "크지. 포기는 억울한 건데 선택은 내가 한 거니까." 전화를 끊었다.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결정하지 않기로 결정 다음 날 출근했다. 본부장이 불렀다. "민지씨. 프로젝트 괜찮죠?" "네." "중간에 공백 없죠?" 순간 화가 났다. 하지만 참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믿어요. 민지씨니까." 사무실로 돌아왔다. 노트를 펼쳤다. 적었다. "결정:프로젝트는 한다. 최선을 다한다. 아이 계획은 미루지 않는다. 병행을 시도한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포기가 생기면 그건 선택이었다고 기억한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는다."마지막 줄에 밑줄을 그었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임 검사 받자. 그리고 프로젝트도 하자. 둘 다." 남편이 답했다. "같이 하자." 34세 7개월의 선택 저녁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뭔가는 포기해야 한다. 그게 30대 여성 직장인의 현실이다. 그런데 포기를 강요하는 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둘 다 시도하기로 했다. 안 될 수도 있다. 중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도는 한다. 유저 리서치 할 때 배운 게 있다. 완벽한 솔루션은 없다. 하지만 최선의 솔루션은 있다. 제약 조건 안에서 최선을. 내 인생도 그렇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있다. 34세 7개월. 생물학적 타임라인과 커리어 타임라인이 겹친다.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시도한다. 양쪽을 원하는 게 죄가 아니니까.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저녁을 차려놨다. "검사 예약했어." 남편이 말했다. "다음 주 토요일. 같이 가자." "고마워." "뭐가. 당연한 건데."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래서 더 고맙다.양쪽을 원하는 건 죄가 아니다.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