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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컨퍼런스 가는 주말, 회사 동료는 쉬고 있다

UX 컨퍼런스 가는 주말, 회사 동료는 쉬고 있다

토요일 아침 9시 알람이 울렸다. 토요일인데. UX Korea 2024 컨퍼런스. 사전등록 15만원. 작년에도 갔다. 재작년에도. 남편은 옆에서 자고 있다. 같은 회사 개발자. 주말에 개발 컨퍼런스? 절대 안 간다. "주말까지 일 생각하기 싫어." 나는 옷을 입는다. 편한 옷. 노트북, 아이패드, 펜슬. 가방이 무겁다. "또 가? 회사 돈 안 나오잖아." 남편 말이 맞다. 회사 지원 없다. 15만원 내 돈. 교통비도 내 돈. "그래도 가야지." 왜 가야 하냐고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온다. 그냥 안 가면 불안하다.강남역 코엑스 9시 반. 이미 사람이 꽉 찼다. 명찰을 받는다. "김지은 / UX기획팀 / ○○○○". 회사명 적는 게 자연스럽다. 다들 적는다. 로비에서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이 명찰을 본다. 내 명찰도 본다. 대기업이라는 게 보인다. 시선이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저도 UX 하는데요." 3년 차 후배다. 스타트업. 연봉 4500만원이라고 한다. "선배님, 대기업 UX 어떠세요? 저도 가고 싶은데." 어떠냐고? 잘 모르겠다. "리서치 환경은 좋아. 예산도 있고. 근데..." 말을 흐린다. 근데 뭐지? 정치? 느린 의사결정? 혁신 없는 안정? "부럽네요. 저희는 리서치 예산 없어서 게릴라 인터뷰만..." 그 말에 죄책감이 든다. 나는 혜택받고 있다. 7200만원. 복지. 안정성.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첫 번째 세션 "AI 시대의 UX 리서치" 연사는 미국에서 온 리서처. 구글 출신. 이력이 화려하다. "GPT-4를 활용한 유저 인터뷰 분석. 시간을 70% 단축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끄덕인다. 노트를 적는다. "GPT-4 인터뷰 분석 - 70% 단축". 근데 우리 회사는 GPT 못 쓴다. 보안 문제. 내부 LLM 도입 중인데 언제 될지 모른다. 적은 노트가 무의미해 보인다. "Synthetic User를 만들어 빠르게 프로토타입 검증..." 또 끄덕인다. 또 적는다. "Synthetic User". 이게 뭔지도 잘 모른다. 9년 차다. 모르는 게 나온다. 작년엔 "Behavioral Analytics Platform". 재작년엔 "Jobs-to-be-Done 2.0". 매년 새로운 게 나온다. 따라가야 한다. 옆 사람이 속삭인다. "우리 회사도 도입해야 하나?" 나도 생각한다. 우리도? 근데 기존 프로세스는? 기존 리서처들은? 세션이 끝났다. 1시간. 머리가 아프다.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먹는다. 15,000원. 비싸다. 테이블에 앉았다. 옆에 또 누가 온다. "혹시 ○○○○ 다니세요?" 명찰을 봤다. 또 시작이다. "네. UX 기획 하고 있어요." "와, 거기 UX팀 유명하잖아요. 부럽다." 부럽다는 말을 오늘만 세 번 들었다. "선배님은 몇 년 차세요?" "9년." "와. 시니어시네요. 저 1년 차인데 조언 좀..." 조언. 뭘 해줘야 하나. "많이 보고, 많이 만들어 보고, 유저 인터뷰 많이 하고." 진부한 조언이다. 내가 들어도 진부하다. "컨퍼런스도 자주 오세요?" "응. 자주." "대단하다. 저는 돈이 아까워서..." 1년 차는 15만원이 크다. 나도 1년 차 땐 컨퍼런스 안 왔다. 그런데 9년 차인 지금, 15만원 내고 왜 오는 걸까. 배우려고? 트렌드 따라가려고? 아니면 불안해서?오후 세션들 "데이터 기반 퍼소나 구축" "디자인 시스템과 UX 거버넌스" "리서치 없이 빠르게 검증하는 법" 세 개를 연속으로 들었다. 3시간. 노트는 가득 찼다. 10페이지. 근데 월요일에 뭘 쓸 수 있을까. GPT-4? 못 쓴다. Synthetic User? 우리 환경에 안 맞는다. 빠른 검증? 우리 회사는 느리다. 정치적 이유로. 적은 건 많은데 쓸 건 없다. 마지막 세션이 끝났다. 5시. 사람들이 네트워킹 한다. 명함을 주고받는다. 나도 몇 장 받았다.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연락 주세요." 연락 안 온다. 작년에 받은 명함들도 연락 없었다. 로비를 나선다. 밖은 어둡다. 집에 오는 지하철 7호선이다. 앉았다. 카톡이 왔다. 남편. "저녁 먹고 와? 나 치킨 시켜 먹었어." 나도 배고프다. 근데 피곤하다. "응 먹고 갈게." 거짓말이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 적은 노트를 본다. "GPT-4 인터뷰 분석 - 70% 단축" "Synthetic User 프로토타입 검증" "데이터 기반 퍼소나 자동 생성" 화려하다. 미래적이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우리 팀은 아직 엑셀로 리서치 데이터 정리한다. Notion 전환한 지 1년 됐다. Figma로 프로토타입 만드는 것도 작년부터다. 9년 전 내가 입사했을 때. 파워포인트로 와이어프레임 그렸다. 지금은 Figma. 5년 후엔? 또 바뀐다. 계속 배워야 한다. 안 배우면 도태된다. 근데 언제까지 배워야 하나. 휴대폰을 본다. UX 커뮤니티 단톡방. "오늘 컨퍼런스 어땠어요?" "저도 갔어요! AI 세션 대박이었어요." "Synthetic User 우리도 도입해야 할 듯." 다들 흥분했다. 나도 댓글을 단다. "좋았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또 거짓말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9시. 팀원이 물었다. "주말 잘 쉬셨어요?" "응. 컨퍼런스 갔다 왔어." "또요? 주말까지 고생하셨네요." 고생이 아니다. 배우러 간 거다. 근데 뭘 배웠지?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GA4 대시보드를 본다. "이번 주 리서치 일정 조율해 주세요." 팀장 메시지다. "네. 오전 중에 공유드리겠습니다." 같은 일이다. 지난주랑. 지지난주랑. 유저 인터뷰 일정 잡고. 설문 만들고. 데이터 분석하고. 인사이트 정리하고. 기획에 반영하고. 컨퍼런스에서 배운 건? 안 쓴다. 못 쓴다. 환경이 안 된다. 그럼 왜 갔나. 불안해서다. 안 가면 뒤처질 것 같아서. 점심시간 대화 후배랑 밥을 먹었다. 5년 차. "언니, 주말에 컨퍼런스 갔다 오셨다며요?" "응. 재밌었어." "부지런하시다. 저는 주말엔 쉬고 싶어서..." 맞는 말이다. 쉬어야 한다. 주말은 쉬는 날이다. "근데 언니, UX 트렌드 계속 따라가야 하나요? 솔직히 피곤해요." 5년 차의 고민이다. 나도 5년 차 때 같은 고민 했다. "따라가야지. 안 그러면..." 말을 멈췄다. 안 그러면 뭐? 도태된다? 회사에서 잘린다? 경쟁력 떨어진다? 다 핑계다. 진짜 이유는 불안이다. 내가 뒤처지는 게 무서워서. 시니어인데 트렌드 모르면 창피해서. "언니도 불안하세요?" 후배가 물었다. "응. 불안해." 솔직하게 답했다. "9년 차인데요?" "9년 차라서 더 불안해."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표정. "저도요. 요즘 AI 나오면서 UX 리서처 필요 없어질까 봐..." 다들 불안하다. 1년 차도. 5년 차도. 9년 차도. 이 업계가 그렇다. 빠르게 변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 근데 언제까지. 수요일 저녁 야근이다. 리서치 보고서 정리. 7시. 팀원들은 다 갔다. 나만 남았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GPT-4 인터뷰 분석"이 생각났다. 70% 단축. 나는 수동으로 한다. 녹취록 보고. 인사이트 추출하고. 카테고리 분류하고. 3시간 걸렸다. GPT 쓰면 1시간이다. 근데 못 쓴다. 배운 게 무의미하다. 노트북을 닫았다. 9시. 집에 가는 길.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를 샀다. 500ml. 집에 와서 마셨다. 남편은 게임 중이다. "고생했어. 오늘도 야근?" "응." "주말에 쉬어. 컨퍼런스 말고." 맞는 말이다. 쉬어야 한다. 근데 다음 주 토요일. 또 컨퍼런스가 있다. "AI와 디자인의 미래". 신청했다. 12만원. 목요일 팀 회의 기획 회의다. 신규 서비스. "이번엔 리서치 스킵하고 빠르게 만들죠." PM이 말했다. "유저 리서치 없이요?" 내가 물었다. "네. 시장 빠르게 변하잖아요. 일단 만들고 AB테스트로." 이 대화. 100번 했다. "최소한 인터뷰라도..." "인터뷰 일정 잡으려면 2주 걸려요. 그냥 만들어요." 졌다. 또 졌다.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리서치 없이 빠르게 검증하는 법" 자료를 꺼냈다. 읽어봤다. "Lean UX". "빠른 프로토타입". "가설 검증". 우리가 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차이가 없다. 그냥 리서치 안 하는 거다. 둘 다. 컨퍼런스는 멋있게 포장했을 뿐. 금요일 오후 후배가 물었다. "언니, 이번 주말에 스터디 있는데 오실래요? UX 케이스 스터디." 스터디. 또. 작년엔 매주 갔다. 올해는 격주. 다음엔? "이번 주는 좀..." 거절했다. 처음으로. "아, 그러시구나. 바쁘신가 봐." 바쁜 게 아니다. 피곤하다. 배우는 게 피곤하다. 트렌드 따라가는 게 피곤하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게 피곤하다. 퇴근했다. 6시.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웠다. 남편이 물었다. "주말에 뭐 해?" "아무것도 안 해." "컨퍼런스 없어?" "있는데 안 가." "오, 대박. 처음이다." 맞다. 처음이다. 토요일 아침 10시 일어났다. 알람 안 맞췄다. 남편도 옆에서 자고 있다. 휴대폰을 봤다. UX 커뮤니티 단톡방. "오늘 컨퍼런스 오신 분?" "저요! 지금 가는 중." "AI 세션 기대된다." 나는 안 간다. 처음으로. 죄책감이 든다.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다. 시니어인데 안 배우면 창피하다. 근데 피곤하다. 번아웃 직전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왔다. 커피를 내렸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TV를 켰다. 예능. 웃긴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 UX 생각 안 했다. 리서치 생각 안 했다. 트렌드 생각 안 했다. 1시간이 지났다. 죄책감이 줄었다. 일요일 저녁 주말이 끝났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배웠다. 컨퍼런스도 안 갔다. 스터디도 안 갔다. UX 아티클도 안 읽었다. 그냥 쉬었다. 남편이랑 영화 봤다. 공원 산책했다. 집에서 빈둥댔다. 죄책감은 있었다. 근데 괜찮았다. 월요일이 온다. 또 일한다. 또 리서치하고 기획한다. 컨퍼런스에서 배운 건 못 쓴다. 환경이 안 된다. 괜찮다. 중요한 건 배우는 게 아니라 쉬는 거다. 9년 차다. 아직도 배워야 한다. 근데 쉬어야 한다. 균형이다. 배우는 것과 쉬는 것. 성장과 번아웃. 불안과 여유. 토요일 컨퍼런스. 다음엔 갈 수도 있다. 안 갈 수도 있다. 선택이다. 의무가 아니라.9년 차 시니어도 불안하다. 그래도 쉴 권리는 있다.